"그 사람 ISFP라고 하더라고." 한 식당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성 둘의 이야기가 귀에 꽂혔다. 최근 소개팅 상대의 MBTI 이야기였다. 그들은 이 주제를 반찬 삼아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I 성향이 본인과 잘 맞다나 뭐라나.
MBTI라는 성격유형검사가 유행이다. MBTI는 외향-내향(E-I), 감각-직관(S-N), 사고-감정(T-F), 판단-인식(J-P) 지표를 기준 삼아 사람의 성격을 16개로 나눈다. 한 예로 ISFJ가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하다면, 반대인 ENFP는 일상 활동에 지루함을 느낀단다.
사람의 특성을 간단한 도구로 규정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낯설진 않다. MBTI 이전에는 혈액형이 있었다. 2004년에는 ‘B형 남자’라는 가요까지 나올 정도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별자리나 탄생석에 따라 성격 유형을 구분 짓기도 했다.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법하지만 다수가 열광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다.
혹자는 그 기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내재됐다고 해석한다. 어찌 됐든 모두가 하나의 유형에 해당된다는 점에서다. 스스로를 주변인이라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이 성격유형검사에서는 반드시 비슷하거나 같은 그룹으로 묶이기 마련이다. 그저 몇 자리일 뿐인 알파벳에 느끼는 동질감은 얕지만 적당한 안온을 준다.
소속감을 좇는 바람 속엔 빠르게 상대를 파악해야 하는 세대의 습성도 묻어난다. 소개팅 후 3번의 애프터(데이트 신청)를 한 시점에서 관계를 이어갈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의 ‘삼프터’도 그렇다. 점과 점으로 살아가는 이상 누군가와의 교류에 한없이 시간을 쏟기란 어려울 뿐더러 익숙지 않은 듯하다. 연인도 이러한데 하물며 전통적인 가족, 회사, 공동체의 진득한 소속감은 분명 낡은 이야기다.
그렇다고 비교적 느슨해 보이는 관계를 부정적으로만 치부하기는 아쉽다. 오히려 이 정도의 거리가 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어디세요? 고등학교는? 대학은요? 가족관계는?’이라는 고루한 문답들에 비하면 MBTI는 적어도 ‘나’에게만 집중한 질문이 아닌가! 나도 나를 알기 어려운 세상에서 온전히 나의 성격과 생각, 행동방식을 향해 보내는 타인의 관심은 감사한 일이다.
지난주 처음 참석한 모임에서도 어김없이 MBTI 이야기가 나왔다. E(외향)가 51%고 I(내향)가 49%인 나는 항상 어느 쪽을 말할지 고민한다. 결국 모두와 가까워지려 구구절절 검사 결과를 설명해 버린다. 이렇게 사회적 동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