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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Oct 04. 2024

뒷담화 대군과 수다 마왕 1인의 싸움

다수의 따돌림 속 견디는 것이 불리해 제가 나가고 맙니다.

한국에서 괜찮은 프로필과 겉으로볼 때 멀쩡한 가정환경, 결혼, 출산, 육아 그리고 대학원과정을 앞두고 있던 내가 돌연 캐나다로의 이민 결심을 한 데에는 숨겨진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화 차이. 같이 한국에서 낳고 자란 한국사람이면서 웬 말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겐 남과 반대되는 속사정이 있다.


알게 모르게 내가 한국에서 잔존하던 2010년까지도 한국 사회는 겸양이 미덕이던 사회였다. 물론 요즘은 자기 표현의 시대라며, 인스타 계정을 갖고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이가 없고, 상사에게나 부모 또는 윗세대에게 반항하는것이 주류 트랜드가 된지 오래이며, 너도나도 자신의 우울증 고백, 이혼 고백, 정신상담 등을 고백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다는 생각이 퍼져있는 것으로만 봐서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전엔 사람들이 감히 정신과 기록을 남기기 무서워했고, 왠만하면 남자든 여자든 이혼 말고 배우자의 잘못을 부정하며 살았으며, 선배를 무서워하고 후배는 후배이기에  겉으로 참아줘야 하는 그런 사회였다.


아직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영향권에서 교육받았던 기성세대의 영향을 받고 자란 우리들은 겉으로는 반감을 갖고 촛불집회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아직도 실제 학교생활, 가정과 사회 생활 곳곳에서는 자기어필보다는 겸양이 편안하고, 앞담화는 정치적으로 통제당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가정내외에서 어른이 하는 말에 토를 달 지 않는 것이 공공연한 룰 이었고, 학교 선생님의 권력이라는 부분도 암묵적 침묵 속에서 지켜져왔던 그런 사회적 분위기였다.


여자끼리도 약간 부드러운 형태로 그러한 룰이 만연했으나, 진짜는 남자들 사회안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군대문화가 있어서인지, 상명하복에 세뇌당해서인지, 남자들의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집에서는 아빠로 부터, 회사와 군대에서도 상사를 중심으로 다른 의견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이 들만큼 조금이라도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면 가차없이 따돌림 당하고, 집단에서 내 쫓기는 모습을 보았다. 이견이 절대적으로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대세를 잘 따르느냐, 기존 구성원과 잘 지내느냐가 제1의 목적인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장하기 전에 밟힐 뿐이다. 스스로가 자신을 억누르고 대세에 순응하도록 교육받고 세뇌받았기때문에, 그래서 스스로도 늘 의식적으로든 비의식적으로든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가기에, 자신보다 힘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상관없이 대세와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별난 인간을, 그동안 억누른 감정을 더욱 더해 밟아버리며 철저하게 아프게 하고, 따돌려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일원화된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고, 일원화된 세상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논리라는 것이 애초에 성장할 기회가 없다. 생각할 겨를이 없고, 무조건 오더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잘 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드러내는 순간 밟힐 텐데, 생각이라는 걸 해 봤자 자신만 상처입으려니 애초에 자신만의 생각이라는 걸 만들지 않는 편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사회 생활을 하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며 '거참 협동 안되네, 말도 되게 안들어 쳐먹네'생각하듯, 군대생활을 해 보지 않은 여자들이 남초회사에 갔을 때 목격하고, 가장 크게 경악하는 장면이, '어쩜 저렇게 윗 사람 말을 잘 들을까'이다. 대동단결. 도무지 이견이 없다.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주된 이유이다. 자기생각이 있는 남자,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 외국에서 큰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가장 주된 이유이다. (그리고 사실은 다수의 남자들이 직장생활을 무감각하게 수행해야만하는 이유이며, 언제든 번아웃과 허탈감이 찾아오는 이유인 것 같다. )



것이 힘이 되어 사회가 발전하고, 지탱하고, 지금까지 커 온 것이라는 지배자들의 논리가 민간 대중들 곳곳에까지 스며들어가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일반적인 한국의 문화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오랜 년차동안 사회생활을 하면 할 수록, 여자들도 남자들과 비슷한 상명하복의 일원화된 행동 방식을 갖게 되더라. 바른 생각을 하는 것보다 구성원과 잘 지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기에 내린 결정이며, 잘잘못을 가릴 것도 없다. 싫고 맞지 않는 사람이 나가는게 결론이다.


이런 모습이 한국에서 막 이민온 이민자 집단에서는 아직도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다. 아니, 이민을 온지 얼마가 되었든 스스로, 그리고 집단이 의식하지 않는 한, 그 생각이 죽음의 순간을 마지막으로 언제까지 지속될 지 답이 없다. 한국사회가 답답해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으면서도, 정작 캐나다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공짜로 알려주는 이 없으니, 계속 그렇게 답답한 채로 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렇게 생각과 행동을 유기한 채로 캐나다에서 잔존하는 분들을 본다.


한명 한명 개개인의 사고력이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그냥 사회상의 반영이다. 역사의 반영이며 국민성의 반영이다.  


나의 뒷담화 기능이 거세되어 앞담화가 조절이 되지 않듯. 그 분들도 앞담화 기능이 거세된 채 오랫동안 살았기에 뒷담화 기능이 조절되지 않는다.

앞에서는 다 좋다 좋다 하지만, 진짜 자기말은 뒤에서 한다. 이 때엔 뒷담화를 하며 편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불리하다. 뒷담화 또한 주류를 따라야 함에 분명하다.

나는 뒷담화 고자이기때문에 한국사람들이 대거 모인 집단에서 철저히 왕따가 된다.



그리고 앞담화 고자들은 윗사람에게건 무례한 동료에게건 가리지 않고 할 말 하는 내 뒤에 숨어 슬며시 자신의 이익을 본다. 손 안대고 코를 풀고 실실 쪼갠다.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 나를 집단에서 없애면 그만 이다.


절대 모두가 그런것이 아니고, 주로 내가 자신의 약점을 찾아 공격한다 믿고 복수를 꿈꾸는 편집증적 성향,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활용하고자하는  자기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 남을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지만 자신의 치부와 약함을 끌어안을 수 없어 스스로를 학대하고마는  강박증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나는 유난히 관계가 힘들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방식이 한국사회에서는 너무 순진하고 불리해서 한국을 나왔다.



P.S. 우선 괴물이 되어본 후에만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캐나다에서건 한국에서든  '나를 위해' 사회적 진화를 벌써 이룬 후라, 십여년전 과거 고백이 두렵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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