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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Dec 28. 2020

교무부장님 어깨를 주물러드렸다.

중학교 때 허리가 많이 아팠다. 요가를 하면 나아진다고 해서 요가원을 찾았었는데 수강료가 너무 비싸 등록을 포기했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배우기 시작한 것이 퀼트와 요가다. 


요가는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다. 아사나 동작보다 명상에 주목하는 강사님을 만났을 때는 아사나 동작은 명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도구로써 쓰였다. 아유르베다 치유법에 관심 있었던 강사님을 만났을 때는 몸의 치유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 


어떤 강사님을 만나던 요가를 하는 동안엔 몸의 움직임과 구조에 대해 민감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퇴근 후 만나는 친한 동료 선생님들과 만나면 종종 마사지를 하여 풀어주곤 했다. 


사실 마사지는 측은함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일 하느라 애썼지? 내 손길이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나는 내게 등이나 목덜미를 맡기는 친한 언니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사랑을 전했다. 그래서인지 10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마사지를 하고 나면 언니들은 금세 편안해하며


 "너 정말 마사지 잘하는구나."라고 칭찬을 해줬었다.

 "마사지를 하면 기를 뺏긴다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정말 고마워."

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며 몹시 흡족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똑똑!"

교무 부장님이 우리 교실에 오셨다. 교무 부장님은 교무실에 가면 인사도 제대로 못 받으실 정도로 바쁜 분이셨다. 자상하신 분이었지만 그분께는 큰 학교의 업무가 과중해 보였다. 그분을 만난 후로 웃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하필 자리 구조가 교감 선생님 자리에서 그분이 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구조였다. 늘 시선을 느끼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 편하셨을 리 없다. 


'우리 교실에 왜 오신 거지?'

 업무부서가 달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거의 나눠본 적 없는 부장님이었다. 내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잔뜩 생겼다. 


"저, 선생님. 미안한데, 나 마사지 좀 해 줄 수 있을까?"


순간 너무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다. 마사지는 닿지 않으려 해도 신체 접촉이 되는 행위이다.  등이나 어깨를 만질 정도의 접촉을 친분이 없는 어른 남자에게 해야 하는 일은 거북했다. 내 얼굴에 드러난 거부감을 읽으셨을까? 


"일을 하려는데, 목과 등이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래. 선생님이 마사지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네.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시간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선생님에게 왔어."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는데, 아프시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대충 마사지 흉내라도 내고 보내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엄지 손가락에 닿는 근육이 너무 딱딱해서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리해서 근육을 잡아 늘이려고 하니 내 손이 너무 아팠다. 게다가 최대한 닿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내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언니들을 마사지하며 내었던 사랑의 마음은 당연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질긴 힘줄 같은 근육들을 보다가


"부장님, 죄송한데요. 이 이상은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사지 시작 몇 분 만에 나는 백기를 들었다. 교무 부장님은 겸연쩍어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시고 그래도 아까보다 편해졌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둘러 나가셨다.


부장님은 딱 우리 아빠 연배셨다. 아빠도 사무실에서 저렇게 힘들게 일하시겠지? 평소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교무 부장님이 문을 닫고 나가신 후 한 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분의 '딸'이 아니고 나이는 어리지만 엄연히 ' 직장 동료'였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어 몸을 풀어주는 것이 마사지라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았다. 부장님은 다행히 그 후로는 내게 마사지 부탁을 하지 않으셨다. 


교무 부장님은 나중에 교장 선생님이 되신 후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셨다. 그때 마사지를 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고도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네네,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분께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런 상황에서 단호히 거절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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