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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an 04. 2021

옆 반 선생님이 좋아졌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 신규 교사로 우리 학교에 온 그는 쌍꺼풀이 없는 수수한 인상이었다. 서글서글하게 잘 웃었고 장난도 곧잘 쳤다. 시골 학교에 부임한 젊은 남자 선생님은 학생과 동료 교사 모두에게 곧 인기를 끌었다. 어떤 힘든 일을 맡겨도 싫은 내색 없이 척척 해내는 모습에 그가 교장 교감 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끔 학교에서 선생님을 볼 때면 웃는 낯이 환해서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손목에 찬 커다란 멋진 손목시계도 그의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 촌스럽고 범생이 같은 남자 선생님들만 보다가 약간은 세련된 느낌의 선생님을 보니 시선이 자꾸 갔다.  하지만 나는 수줍음이 많았다. 종종 남자 선생님들이 편히 건네는 장난에도 금세 얼굴이 빨개지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내가 그에게 말을 붙여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듬해 나는 그와 같은 학년을 하게 됐다. 바로 옆 반에서 그를 매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후 선생님과 함께 연수를 듣게 되었다. 연수실은 20명 정도가 함께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교실이었다. 온풍기 바람은 나오고 있었지만 날이 워낙 추웠기에  연수를 듣는 내내 무릎과 발이 시렸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늘 무릎담요를 들고 다녔었다. 수업 중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별생각 없이 내 옆에 있던 그에게 "무릎 담요 함께 덮을래요?"라고 물었다. 혼자만 따뜻하게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권유했다. 선생님은 흔쾌히 대답했고, 우리는 강의 내내 무릎담요를 함께 덮었다. 


원형으로 둘러앉아 받은 강의가 끝난 후.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선배님 한 분이


 "저 선생님, 네 남자 친구야?"라고 심각하게 물었고. 


나는 "아니에요. 옆 반 동료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가 "와, 근데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사귀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우리'가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자각이 생긴 후부터 나는 그를 만나면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눈치를 챌 만큼 얼굴이 달아올랐다. 숨길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점심시간에 아이들 급식 지도를 얼추 끝낸 후 교사들끼리 모여 점심을 먹었었다. 나는 선생님이 나타나면 긴장하게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내 옆에 앉기라도 하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 됐다. 이렇게 티를 내고 다녔으니 선생님은 아마도 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다. 


하지만 특별히 그는 나에게 어떤 의사표현을 하진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말을 하지도 않았고, 딱히 내게 호감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옆 반 동료였을 뿐이다. 선생님의 태도를 보고, 그에게 나는 딱 '옆 반 동료 선생님' 이겠구나, 생각하며 마음 정리를 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 줄 몰랐던 터라 나는 당황했다. 속상했지만 내 마음도 딱 그만큼이었던 것일까? 분주히 결혼식 준비를 하는 그를 조금은 낯설게 대하게 됐다.


어느날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 반에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의 결혼식이 있기 바로 일주일 전에 나는 캠코더를 샀다. 방송반을 맡아서 영상을 찍는 일이 꽤 재미있었기에 큰 맘먹고 마련했다. 그 사정을 알고 있던 선생님은 그 캠코더로 자신의 결혼식 풍경들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의 그 말을 듣고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 선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새로 산 캠코더의 첫 녹화 테이프에 그의 결혼식을 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힘들었다. 모른 척하고 그의 결혼식 면면을 담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결혼식 촬영을 부탁하는 그의 생각 없음에 화가 많이 났다. 허락되지 않는 짝사랑을 한 나는 그 앞에서 약자였다. 


나는 딱 그만큼 밖에 안됐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를 보기만 하면 빨갛게 달아오르는 뺨은 이제 냉랭해졌다.


 "선생님에게 내 절친을 소개해주고 싶어. 그 애랑 내 아내랑 우리 넷이 만나면 참 재밌을 텐데."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이 아프게 와 닿았다. 내가 선생님의 아내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와는 그 사건 이후 완전히 멀어져 다시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종종 급식실에서 볼이 빨갛게 된 채 고개도 못 들고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사람을 좋아했던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그렇게 앞뒤 못 재고 티를 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눈을 질끈 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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