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면 시간 넉넉하지? 자 핸드폰도 가져가고.”
“그럼요. 시간 충분해요. 다녀올게요!”
“그래, 잘하고 와.”
식탁에 두고 나온 휴대전화를 건네며 문 앞까지 배웅해 주시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상엽은 현관문을 닫는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양복이 어색해서인지,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에도 꼭 보던 휴대전화를 걸어서 15분이나 걸리는 지하철역에 갈 때까지 안주머니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금세 올라탄 지하철에서도 가만히 서서 두세 개의 정거장을 지났을 즈음, 상엽은 그제야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메신저 어플의 단체 대화방에 친구들이 어제저녁에 보낸 메시지가 가득했다.
‘드디어 백수 탈출?’
‘어. 내일 첫 출근이다.’
‘이제 우리도 얘한테 밥 얻어먹을 수 있는 거야?’
‘술도 사주지. 내가 또 이런 건 확실하다.’
‘그래. 양심이 있긴 하지 얘가. 그래서 출근 준비 다 했어?’
‘야 첫 출근날에는 떡 사 가야 해. 안 사가면 그날 바로 찍힌다.’
‘떡 아니야. 요새는 마카롱 돌려야지.’
‘그렇지. 그리고 한 분씩 드리면서 FM 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거 한 명이라도 못 들으면 처음부터 다시 돌려야 한다.’
‘다 헛소리하지 말고 자라….’
아이를 대하듯,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해.’와 같은 말로 상엽을 놀리던 친구들은 미지근한 상엽의 반응에 이내 흩어졌다. 그렇게 잠시 왔다 흩어진 친구들, 선후배들과 가족들의 관심을 다시금 읽어본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고 사람들의 얼굴엔 불쾌감에 조금씩 젖어갔지만, 상엽은 대다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메시지를 다시 보던 상엽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부터 휴대전화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20분이 넘도록 만원 지하철에 서 있었음에도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는 조금 전 현관문을 나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분 만에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상엽은 안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다시금 휴대전화를 꺼낸다.
“예, 할아버지.”
“상엽아. 지금 뭐, 출근 중이야?”
“네 지금 가고 있어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그래, 할아버지가, 우리 상엽이 잘하고 오라고, 전화했어.”
“아, 저야 잘하죠! 준비 잘해서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오야, 가서 잘하고 와. 우리 상엽이, 잘할 거야.”
“아유, 그럼요. 가서 잘하고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끊는다.”
항상 들었던 이야기. 맨날 하시는 말씀에 오늘도 똑같은 말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길에는 떨어져 물에 젖은 낙엽과 흙냄새는 아침의 차가움을 피부가 아닌 코로도 느끼게 했다. 회사까지 가는 길이 제법 멀었지만, 상엽은 빠른 발걸음으로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로 들어선 상엽은 1층을 사용하는 모두에게 개방된 화장실에서 옷매무시를 다듬는다. 여전히 양복에는 먼지 한 톨 묻지 않았다. 가방 안의 준비물까지 마지막으로 확인한 상엽은 마지막으로 안주머니의 휴대전화를 꺼내어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OOO사 신입 입사자 권상엽입니다. 지금 건물 1층 로비에 도착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바로 담당자 내려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토씨까지 준비한 말까지 훌륭하게 마친 상엽은 엘리베이터로 가는 개찰구를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을 맞이하러 내려올 사람을 기다렸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리고 눈을 깜빡이지 않고 긴 시간이 지났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도입부가 시작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