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에 대한 고찰
- 한줄평에 낭만주의에 대한 얘기가 즐비한데, 낭만수집을 자처하는 내가 안 볼수 없었던 영화.
뭐랄까, 군더더기 없어서 좋았다.
[Golden Age Thinking]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다른 곳에 가고 살고싶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처음 길(남주)이 20년대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었을때, 저게 내가 생각하는 낭만주의는 아닌데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늘 일상에 권태감을 느끼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이유는, 잘 알지 못하니까 긍정적으로 일단 생각해보는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희망을 안고 산다. 사람을 만날 때 좋은 사람이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나와도 알맞다.
길게 여행도 다녀보고 여러 가지 "탈 일상" 경험을 하며 느꼈던 건
특별하게 그려왔던 로망이 실현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게 정착되어 현실이 되면 환상은 사라지고
장점과 단점이 남는다는 거다. 물론 더 좋은곳은 있겠지만 이걸 모두가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여기저기 너무 지겹게 말한것들이라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The artist's job is not to succumb to despair but to find the antidote to the emptiness of existence.]
영화 중간에 길이 소설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며 듣는 말이다. 뭔가 곱씹어보고 싶어서 남긴다. 아직 잘 와닿지는 않아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은 문장이다.
- LP가게 직원 가브리엘 너무 사랑스럽다. 몇번 안나오는데 설레는 표정이 너무 아름답다. 진짜 내가 남주 감정이입해서 사랑에 빠지는 듯한 기분을 잠시 느꼈던..
- 나중에 다른 이들의 후기를 보고 알게 된 멋진 해석은, 가브리엘 또한 미래로부터 과거로 시간여행 온 사람일 것이라는 거다. LP가게에서 길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12시 종이 울릴 때 나타나는 점. 그리고 길이 미래에까지 작품을 남길 유명한 작가가 되어 가브리엘은 길의 책을 읽었을 것이고, "파리는 비 올때 가장 아름답죠" 라는 말은 사실 길의 취향을 다 알고 이미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날린 말이었을 것이다.
-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그 사람의 기록을 보고 취향과 성향을 이해하고, 이를 써먹는다는 건 조금 진부해도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설정이다. 이는 또다른 유명한 시간여행물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설정과도 비슷하다. 미래를 알수 있는 방법과 달콤한 유혹, 단골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풀어내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 있어서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소설가 테드 창의 "숨" 이라는 시리즈에서 나오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이라는 단편을 보면 역시 시간여행을 맛볼 수 있다. 이 소설의 결말을 잊을 수가 없어 문득 문득 떠올리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주인공은 그의 잘못으로 인해 아내의 최후의 순간을 함께할 수 없었고 그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나선다. 과거로 돌아간 그는 결국 그녀를 만날 수 없었고, 대신 다른 이에게 그녀의 마지막 유언을 전해 듣게 된다. "아내분꼐서는 죽는 그 순간까지 절대 남편을 원망하지 않으셨고, 당신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는 절대 바꿀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영화와는 좀 주제가 거리가 있지만, 정말 인상깊어 추천하는 소설이다.
- 굳이 비현실적인 소재를 구구절절 설득하려 하지 않고 툭 던져서 전개하는 그 연출 방식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파리를 갔다온 지 오래인데, 그래도 다른 나라랑 다르다는 건 확실히 느꼈던 기억은 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파리에 재방문하고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 사실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작가 등의 작품에 대해 잘 모르는데, 이 참에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을 설득하려면 그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