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 『0 영 ZERO 零』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
정말 인생은 허공처럼 텅 빈 상태일까? 어떤 교훈도, 깨달음도 없이? 이 소설 속 화자 '알리스'는 그렇게 믿는다. 소설 내내 0의 상태를 보여주는 듯한 '알리스'의 말과 행동은 묘한 설득력을 가지기까지 한다. 그 솔직한 언변에 빠져들었던 독자는 소설 끝에 이르러 '알리스'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였음을 깨닫고 난 뒤에야 그녀에게 의심을 품는다. '알리스'가 인생을 텅 빈 상태라고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는,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비슷한 실수만 반복하며 살았기 때문인 건 아닐까.
'알리스'는 남자친구 '성연우'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며 만난 학생 '박세영'에게 어떤 애정도 느끼지 못한다. 대신 그들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데서 쾌락을 얻는다. 가스라이팅과 연극적인 행동들을 반복하는 그녀는 남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관계를 먹고 먹히는 관계로만 인식한다. 그 세계관이 조금 속물적이긴 해도 현대 자본주의가 약육강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알리스'의 화려한 언변과 그 허심탄회한 서술에 쉽게 낚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알리스'의 능수능란한 언술과 (조금 괴랄하기는 하지만) 솔직한 태도는 독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소설을 더 읽을수록 독자는 '알리스'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다. '알리스'가 중언부언하다가 끝내 첫 서술과 배치되는 서술까지 서슴지 않을 때, 독자는 결국 화자에 대한 재평가를 내린다. 일말의 호감까지 모두 떨어진 채, 왜 저런 비도덕적이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즐기는 건지 의심을 품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침내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망상이 드러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알리스'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더욱 선명해진다.
'알리스'는 그렇게 기억을 윤색하고 피드백을 거부함으로써 자신만의 세계관에 갇힌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알리스'에게 인생은 아주 텅 빈, 교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실은 고립이나 다름없다. 현실을 왜곡해 인식하고, 실수를 인정하길 거부하면서 발생하는 고립. 그렇게 '알리스'는 자신을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갈 때까지 끝내 어떤 화해도 맺지 못한 채 0의 상태에 고립되고 만다.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 텅 빈 곳에 혼자, 아주 외롭게. 이 소설은 경쾌한(!) 문장으로 그 0의 상태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