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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YHEE Jean May 04. 2022

우크라이나 사람들, 스스로를 위로하다

베를린 필하모니, 우크라이나 키이우 오케스트라 공연

얼마 전 4월 27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특별한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를 타지에서 개최한 것이지요.  

우크라이나 분들은 여권만 제시하면 모두 무료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전 제 돈으로;)

공연장 안팎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나 탄성을 터뜨리는 모습이 흔히 보였습니다.

저는 요즘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분들께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 있는데요,

그중 한 가족(어머니 & 따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연주를 맡은 무대 위 키이우 심포니 오케스트라 (Kyiv Symphony Orchestra) 단원들을 보며

이들이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왔는지, 무슨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을지 상념에 잠기곤 했습니다.


쾌활해만 보이던 우크라이나 지인분도 연주회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 2월 딸과 갑자기 피난길에 나선 후 베를린 도착 전까지 영하 날씨에 말 못 할 고생을 했다고 말을 꺼냅니다.

그런데도 흐느끼거나 격앙된 사람이 연주회 전후로 아무도 보이지 않아 인상적이었습니다.

딱 한번, 몇 차례 기립박수 이후 퇴장 중이던 청중 사이에서 어느 여성분이 외친 "우크라이나 만세!"라는 구호에 모두 큰 목소리로 화답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그런데 연주회는 이러한 배경과 맥락 없이도 연주회로서 너무 좋았습니다.

처음 들어본 우크라이나의 대표적 작곡가 보리스 리야토신스키(Boris Lyatoshinsky)의 3번 교향곡은 특히 압권이었습니다.

듣는 내내 떠오르던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는, 금관이 불타오르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정도의 이미지로 부족한 표현력을 대신해봅니다.


추후에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므라빈스키가 바로 이 교향곡을 1955년에 다시 지휘했더군요. 1951년 초연 이후 "평화가 전쟁을 이길지어다"라는 원곡의 표제가 소련당국에 검열되며 결국 공연도 금지되었었는데

이걸 삭제한 버전으로 간신히 므라빈스키가 4년 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와 함께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연주의 판본이 그중 무엇이었는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번 베를린에서 이 곡을 택한 이유가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 (Dr. Yhee, Jean, Institut Politik+Kultur)



p.s.    이날 (4월 27일)까지 독일에 '난민으로 등록된' 우크라이나 시민은 모두 381,521명이라고 합니다.

p.s.2. 연주 프로그램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calendar/details/54486/

공연 직후 기립박수를 보내는 청중

#독일정치문화연구소 #jeanyhee #이진 #우크라이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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