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난민'이라는 피상적이자 무차별적인 말로 뭉뚱그려지곤 하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특별한 자신만의 일상과 생애사를 갖고 있는 개인입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새 이웃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한 공식 행사 "Wir sind Nachbarn" (We are Neighbors)를 만들기 전 사람이 사람을 알게 되는 내밀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놀이 친구가 되고 어른들은 서로의 얼굴을 익히며 신뢰와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이들이 NGO에서 일하던, 학교에서 역사, 영어 그리고 IT를 가르치던 분들이고 또 음악가이고 미술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우크라이나의 한 동네가 베를린에 다시 모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전쟁으로 상처 입고 멈춰버린 후 이곳 베를린에서 새로운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베를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이웃 지원 행사 "Wir sind Nachbarn" (We are neighbors) 모습
지난주의 공식 행사를 통해, 선생님은 계속 가르칠 수 있게 학생은 조금이라도 빨리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일선 학교 및 장학재단과 연락을 취하며, 음악가와 미술작가를 위해서는 음악 교육, 공연과 전시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내국인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는 독일의 보편적 사회보장제도가 있다고는 해도, 그 제도에 낯선 사람이 맞닿뜨릴 때 생기는 구체적인 문제들은 역시 사람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이들이 베를린의 새로운 이웃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제도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문화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너무 선명해서 손에 잡힐 것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더 해결해놓아야 펼쳐놓았던 책이 다시 눈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를 다시 함께 짚어보는 다음 행사도 곧 6월 중에 열립니다.
지난해 한겨레신문에 독일 총선 관련 기고문을 올리며, 당시 주의회 선거에 도전했던 한 독일 청년 정치인의 인터뷰를 함께 실었었습니다. 데스크는 선거의 향방에 아무래도 더 관심을 가졌겠지만 정말 독일 정치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지역 정치와 청년 및 소수자 정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기고문: https://www.hani.co.kr/.../society_general/1011315.html )
선거에는 아쉽게 낙선했지만 그에게는 계속되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베를린에서 제일 면적이 넓은 트렙토어-쾨페닉 구청(Treptow-Köpenick)의 보건 문제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습니다. 관료주의에 지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그의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바로 그 청년 정치인, 사민당의 알렉산더 프라이어-빈터베르프 Alexander Freier-Winterwerb (Bezirksstadtrat für Jugend und Gesundheit in Treptow-Köpenick, #SPD) 페북에서는 오늘도 지난 행사에 모였던 우크라이나 이웃들을 지원하기 위한 토론과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도 논의를 위해 다시 만난 그는 저보다 더 열심히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고 메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만든 저도, 행사에 참가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분들도 독일 유권자가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돕는 것이 가치 있다고생각합니다. 이런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그러한 가치들로 이루어진 체계가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문화입니다. 이러한 포용적이며 다양성을 중시하는 정치 문화가 꼭 베를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래서 많은 베를리너는 베를린을 사랑하며 이 도시에 저마다의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방선거가 막 끝났습니다. 그 결과에만 생각을 묶지 말고, 제대로 된 청년 정치 그리고 지역 공동체 정치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야 합니다. 숄츠 총리부터 프라이어-빈터베르프까지 모두 청년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들 모두 청소년 시기 정당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프라이어-빈터베르프가 그런 것처럼, 선거에 낙선했다고 해도 열정을 잃지 않는 젊은 청년에게는 지자체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활동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장차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정치적 과정을 기억하고 지지하는 지역 공동체는 민주주의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