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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Feb 14. 2024

나는 정말 자신이 없어요 - 4

그래도 가야 한다.

아버님의 첫 기저귀를 간 날 나는 간병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기저귀를 갈아서 한편으로는 간병을 할 때 가장 난코스를 해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일견 대견하다고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기꺼이 할 마음 자세는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그래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병원을 떠난 저녁시간부터 그다음 하루는 아주버님이 아버님의 간병을 하셨다. 아버님은 여전히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온전히 깨어있는 통에 밤에도 간병하는 사람은 잘 수가 없었다. 연이어 이틀을 한 사람이 간병을 하기에는 간병하는 사람의 건강도 걱정이 되었다. 학교는 개학을 했다. 전담이라 개학식날 수업이 없었던 나는 아주버님이 걱정이 되어 연가를 내고 하루 또 간병을 하겠노라고 말했다. 

한 번을 해 봤어도 기저귀가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이긴 했지만 한 두 번 눈 딱 감고 하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연가를 내고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가족 카톡방에 아버님에 대한 경과가 아주버님으로부터 톡으로 올라왔다. 간밤에 어쩌다가 소변줄이 빠졌는데 빠진 김에 소변줄을 빼기로 했다는 것,  소변줄을 뺐는데 아버님이 소변을 자주 누시는데 몸을 움직이셔서 그게 자주 센다는 것, 관장약을 넣은 후로 배변이 계속 설사 형태로 줄줄줄 나오고 있다는 것, 배변과 소변이 조절이 안되어서 기저귀를 30분 간격으로 갈고 있다는 것, 시트도 다 젖었으니 나보고 침대 시트와 아버님 환자복을 갈아입혀야 한다는 것, 휠체어 타는 연습을 처음으로 시도해 보라는 것 등등..


병원에 가기 전부터 나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삼십 분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니.. 아버님을 어떻게 들어서 휠체어에 앉히며 옷과 시트를 갈아입혀야 하는지.. 나는 병원행 지하철이 한없이 역을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병원에 들어갔다. 

아주버님은 나에게 새로 갈 침대 시트와 아버님이 타게 될 휠체어 번호 등을 인계하고 가셨다. 나는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고 아버님께로 갔다. 이틀 전 나에게 연거푸 서너 시간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님이 아니라 잠을 못 주무셔서 고꾸라지고 괴로움에 가득 찬 아버님이 병상에 계셨다.


소변줄을 빼 보았는가? 나는 한 번 소변줄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소변줄을 빼고 나면 가장 큰 문제는 방광이 자기의 느낌과 기능을 원래대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소변이 곧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도 사실은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서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아버님이 자주 소변을 누신다는 아주버님의 말 때문에 소변줄을 뺐을 때의 그런 어려움을 아버님이 수월하게 넘어가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간 그날 오전 아버님은 정확하게 그 느낌으로 괴로워하고 계셨고 이제는 소변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 하셨다.


나에게 화장실에 가자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버님을 들 수도 휠체어에 옮겨 태울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직은 의사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서 화장실을 갈 정도의 몸상태가 아님에도 아버님은 내게 소변을 콸콸 배설하고 싶은 느낌 때문에 계속 화장실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낙상의 위험으로 인해 절대 안 된다고 말씀드렸고 그냥 기저귀에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아버님은 기저귀에 할 양이 아니라시며 소변통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고 그것을 자기의 생식기에 대어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소변이 안 나와서 괴로우니 '소변아, 나와라. 쉬~~'같은 소리를 하시며 생식기 주변을 주무르셨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버님이 괴로워하시며 해달라고 하시니 나는 아버님의 부탁대로 소변통을 대어드리고 그것을 잡고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괴롭고 당황한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나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는지도 지금도 모르겠다. 지금 떠올려봐도 나는 그 순간이 괴롭고 도망가고 싶었다.


몇 번이나 아버님이 조금 하신 소변통을 비우고 오면서 '미쳐.'를 속으로 외쳤는지 모른다. 우리 아버님은 언제나 남을 배려하시고 섬기신 분이셨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셨을까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버님은 정말이지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셨다.ㅠㅠ

소변은 소변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버님은 온종일 괴로워하셨다. 얼마나 괴로워하셨는지 말씀도 못하게 괴롭다 하셔서 나는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놓아달라고 했고 진통제의 효과가 들어가기 전까지 아버님은 정말 고통스럽다고 하셨다. 


소변을 무척 하고 싶은데 소변이 나오지 않는 동시에 대변은 계속해서 주기도 없이 줄줄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버님께 가자마자 기저귀를 갈기 시작해서 거의 한 시간에 한두 번씩 기저귀를 갈고 있었는데 기저귀를 버리러 가는 순간마다 속에서 깊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고작 간병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난 시간,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잠시 병원 1층에 내려왔을 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아버님의 상태를 묻는 남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혀 한숨만 쉬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눈물은 정말이지 내 멘붕 상태의 분출이었고, 기 막힌 상황의 조건반사적 반응이었다. 똥기저귀를 삼 심 분마다 한 번씩 가는 것도, 아버님의 기저귀를 다 풀어헤치고 생식기에 소변통을 대고 있는 것도, 아버님이 소변이 안 나와서 괴로워하시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시는 것도, 소변과 관련된 말씀을 하시는 것도, 나는 다 어렵고 싫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그런 시아버님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평생 내가 아는 누구보다 이타적인 삶을 사셨던 시아버님이 남편의 말을 빌리면 염치가 없어지시고 본능 그대로 행동하시는 것이 아마도 뇌출혈 때문일 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런 것일까?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이런 간병을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 아빠라도 나는 이런 간병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전화를 끊고 나니 이제는 또 남편의 마음이 걱정이 되었다. 나에게 남편이 먼저 간병을 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혼자 간병을 하고 있는 형을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또 간병인에게 뇌출혈 초기의 황금 재활 기를 맡겨버리기 싫어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아 나 스스로 하겠다고 한 간병이었다.  남편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너무 내 놀란 것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투영하여 이제는 남편이 내 걱정을 하며 마음 쓰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그것이 또 미안했다.


나는 아주버님을 깨워 병원으로 보내겠다는 남편에게 서둘러 톡을 보냈다.

' 여보전화 오니 나도 모르게.. 맘 쓰지 마요. 괜찮아요. 아주버님도 주무시게 둬요. 병나요.  이젠 아버님의 요구를 잘 거절해 볼게요.'


1층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병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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