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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를 May 24. 2020

[책 리뷰] 어떤 노인

구병모의 <파과>를 읽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형성을 탈피한 캐릭터를 보는 일은 종종 즐겁다. 쉬이 보아오지 못한 인물이기에 반갑고 흥미로워서겠지만, 망작이 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이런 캐릭터를 살려내느라 변태적 완성도에 만전을 기했을 작품 너머의 제작자를 떠올리는 경외감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K-콘텐츠에서 노인의 역할은 특히 한정적이고 안일하다. 노년 여배우는 대개 누군가의 표독스런 시어머니거나 귀 얇은 친정 엄마로 분한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젊은 옆집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섰던 문숙의 캐릭터나, 노희경 작가의 <디어마이프렌즈>에 나오는 시니어 캐릭터들이 귀중한 이유다.




 구병모의 장편소설 <파과>의 주인공인 ‘조각(爪角)’은 66세의 여성 노인이자 살인청부업자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이 인물의 비전형성과 다면성이 설명되는 바, 캐릭터를 이야기 속에서 일관되게 수습하고 진정으로 소구하는 일은 오롯이 조각을 탄생시킨 작가의 몫이다. 그리고 그 동안 다수의 작품에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익숙한 배경 속 한 방울의 판타지를 기가 막히게 녹여내 온 작가는, <파과>에서도 이 할머니 킬러를 끝까지 힘 있게 끌고 간다.




 조각은 육체적 역량의 우월함 외에도 여러 면에서 사회가 여자 노인에게 기대하는 바를 가볍게 무시한다. 책 전체를 통틀어 그녀가 입 밖에 내뱉는 말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대사가 있다. 흔히 모르는 중장년 여성을 예의 바르게 칭하기 위해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택한 이들에게, ‘난 당신 어머니가 아니에요.’로 일갈하는 대목이다. 소설은 그녀에게 젊은 시절 임신 경험이 한 차례 이상 있었음을 암시하지만, 현재의 모성애 혹은 인류애 결여가 그 암시와 유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 자체로 온전한 메시지다.




 조각은 30대 중반의 남자 등장 인물에게 연정과 유사한 마음도 품는다. 나이 많은 여성이 자신의 나이보다 절반에 가깝게 어린 남성에게 느끼는 성애적 감정의 묘사가, 문학 작품에서 그 반대의 경우보다 월등히 희귀했음은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의 감정에 별다른 죄책감도 뻔뻔함도 느끼지 않는 대신 나이 듦과 함께 새롭게 찾아온 망설임이나 연민 같은 다른 정서들에 더 집중하는 그녀의 반응이 주목할 만하다. 노인의 사랑이 특별히 더 숭고하거나 유달리 추악할 것은 없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조각은 네일 아트를 받는데, 소설 내내 등장하는 ‘손톱’에 대한 메타포를 차치하고라도 이 대목은 그 자체로 강력하다. 만일 영화화한다면 <마더>의 김혜자가 갈대숲에서 춤 추는 장면만큼 기묘하리라. 노인에게 외양을 가꾸는 일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원문을 일부 발췌한다. 다소 길지만, 작가 특유의 긴 호흡과 만연체가 그 내용을 반박하기 쉽지 않은 날카로움으로 번지게 하는 데 일조하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보통 사람들이 전철에 오른 수많은 노인 가운데 유독 한 명에게 찰나 이상의 시선을 보낸다면 이유는 아마 그가 열차 끝 칸에서부터 쓸어온 신문 뭉치를 품에 안은 채 누군가 혹시 흘렸을 파지를 찾아 선반을 훑으며 서 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치고 다니기 때문이거나, 보랏빛 점무늬가 날염된 항아리 팬츠와 고무신 차림으로 들어서자마자 갓 짠 참기름과 생강 냄새를 풍기는 커다란 보퉁이를 명백히 통행에 방해되게 바닥에 내려놓고 그 옆에 보란 듯이 주저앉아서 아이구 아이구 앓는 바람에 결국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몸을 일으켜다 자리를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로, 장년 여성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쇼트커트 펌이 아니라 모자도 없이 허리까지 닿는 백발의 직모를 곱게 빗어 내린 노인이 어르신들 얼굴에 피어나게 마련인 저승꽃을 흰 분으로 어설프게 가리고 떨리는 손으로 깊이 그어 물결치는 아이라인에 설상가상으로 레드컬러 틴트를 입술에 칠하거나 파스텔 톤 미니드레스 정장 차림이라도 했다면 더욱 눈에 띌 것이고 오랜 시간, 어쩌면 그녀가 하차할 때까지 시선이 모일 것이다. 전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즉시 불쾌감을 준다면, 후자는 현실적인 부조화로 인해 당혹감을 주는데, 두 부류 중 어떤 모습이든 간에 별로 깊이 관여하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녀는 사람들이 간주하는 바람직하고 교양 있으며 존경받을 만한 연장자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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