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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를 Jun 02. 2020

유리 도미노

감정의 외주화

홍보대행사 카피라이터 출신인 C  이름도 무시무시한 ‘감정대행사라는  차렸을 ,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영화 <Her> 주인공은 편지를 대필해 남의 진심을 전해주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평생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할  문장에 집착해  C에게 은퇴  직업으로서의 감정대행인은 천직이나 다름없었다. C 감정대행사는 협동조합 형태로 출범했다. C 말고 다른 조합원들은 모두 심리치료사, 약사, 책방 주인 따위의 별개 전업을 가진 이들이었다. 느슨한 형태의  조합은 감정의 자각, 표현, 해소,  모든 것에 서툰 현대인들을 돕기 위한 일종의 360° 컨설팅 연구 프로젝트였다. 클라이언트가 지속적으로 수급된다는 전제 하에 수익화 모델로 전환할 계획이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초반 타겟 선정이었다.



어떤 이가 가장 자신의 감정을 외주 맡기고 싶어할 것인가. C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인물들로부터 시작해 최적의 클라이언트 물색에 나섰다. 조합원들의 생각은 각양각색이었다. 감정을 위로할 문화 생활과 일정 수준 이상의 취미 생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저소득층, 아니면 노숙자를 찾아내야 한다, 아니 누구보다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강력범죄 피해자나 유가족이 적합할 것이다, SNS 이모티콘 활용에 스스럼 없는 작금의 2030 세대야말로 감정대리인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다…… 토론은 밤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감정 대행 사업의 첫번째 타겟이  프로파일링이 도출됐다.



'스스로의 행복이나 적성 탐색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전념해온 1950-60년대 출생 베이비붐 세대일 . 가사노동  육아에 일생을 바쳐온 여성일 . 인생에서   이상의 정신적·경제적 몰락을 겪었을 .'



지하철 광고와 조합원들의 지인 , 그리고 다면 평가 면접을 통해 프로파일에 맞는 최종 1인이 선정됐다. 경북 구미시에 살고 있는 박말자 (67). C 조합원들은 감정이라는 개념을 2 가공 가능한 정보로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위해, 말자  개인의 히스토리 수집과 정서 분석에 돌입했다. 말자 씨의 학력은 초졸.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 대학을 보내기 위해 방직 공장에 취직했고, 결혼  남편과의 슬하에 1 2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은 7   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번의 유산  터울진  딸과 막내 아들을 낳아 길렀다. 젊은 시절 남편의 차에서 우리집 것이 아닌 도시락통과 수저를 발견한 뒤로  남편의 외도를    살아왔다. 2000 즈음 남편의 사업이 크게   망한  가세가 기울어,  때부터 말자 씨는 시장 안에서 작은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다. 금은방에서 시장 상인들과 국수 따위를 배달시켜 먹는 것이, 반복되는 말자  일상의 커다란 부분이다. 말자 씨는 지역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OO 의원의 선거운동원이었으며, 세월호 유가족이나 쌍용차 노조원들의 요구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취업준비생인 막내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려오지 않고 주변에 아는 형들만 많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어 무작정 동네 비뇨기과를 데리고 가볼까 고민중이다.



사전 인터뷰에 따르면 말자 씨는 살면서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돌본 적이 없는  같다고 고백했다. C 말자 씨의 감정 파일명을 ‘유리 도미노 저장했다. 오랜 시간 매우 규칙적이고 정교하게 세워둔 것처럼 보이지만,   손대면 겉잡을  없을 것만 같은. 그리하여  부서진 유리 조각들은  이상의  같은  없이 자유로이 재구성되어야만 하는. C 감정대행사는   동안 조합원 각각의 전문성을 발휘해 말자 씨의 감정 외주화를 위한 A to Z 패키지를 기획했다.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대리인들에게 맡길  있도록 이끌어낼 심리 상담부터, 클라이언트의 지적 수준과 성향을 고려한 콘텐츠 추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와 자정 작용을 통한 감정 다스리기 훈련 커리큘럼 등의 상품들이 탄생됐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 C 감정대행사는 말자 씨가 있는 구미로 출장을 떠났다.



말자 씨의 집에 도착했을  C 조합원들이 마주   말자 씨가 아니라, 그의 둘째  정은 씨였다. 그리고 그들의  임상 실험 대상자의 딸은 컴컴해진 낯빛으로 감정대리인들을  밖에 세워둔  말했다.

"엄마가 이걸 너무나 하고 싶어했어요. 근데정말 죄송하지만 지난 주에치매 판정을 받으셨답니다…… 연세에 비해 너무 일찍 왔죠. 아주 아주 오래   말고는 기억을  못하세요."



C 본드가 진득하게 말라버린 바닥 , 도미노들이 하나 하나  자리에서 깨져버려 다시는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광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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