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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를 Dec 27. 2020

네오(Neo)함에 대한 찬양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익명 다중>


익명으로 살다 갈까 다중으로 살다 갈까 익명다중으로 살다 갈까 익명의 시대 익명의 몸뚱이 너덜거리는데 익명의 시대 익명의 정신 짜깁기한 모서리 피가 나는 줄을 입원하고서도 모르는 다중 그러한 다중의 채널을 켠다 허준이가 예진이가 나와 한탕 치고 순풍 산부인과 어설픈 그림이 뜬다 익명을 비웃으며 류시화가 물위에 그림자로 가고 있다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은 기일게 나 있지만 가는 길만 가리키고 풀숲에 엎드린 하일지 그 등허리 위 소설로 이름을 연 최인훈이 다중의 시대에 다중을 말하다가 다중 위에 떴다가 그도 지금 풀숲에 엎드리는 중이다 뜨는 이들이 익명일까 다중일까 익명으로 살다갈까 행복일까 다중으로 살다갈까 기쁨일까 이름은 이름일까 아편은 아편일까 얼굴은 얼굴일까 대마초일까 연예인 엑스터시로 줄줄이 수갑에 줄서서 감방에 어쩌면 안락사 안락사의 시절에 땀을 내고 조용히 사는 나를 누가 무슨 익명이라 부를까 누가 무슨 다중이라 부를까

                                                                                                                   -2002, 최은애





엄마의 시집 속에 들어있는 시다. 91년 신춘문예로 등단을 한 엄마는 언니와 나를 낳고 생업에 전념하느라 꽤 오래 문인 활동을 접어두고 있다가,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 첫 시집을 냈다. 며칠 전 문득 엄마의 시집을 책장에서 꺼내 읽다 이 시가 담긴 페이지를 찰칵, 폰으로 찍어 두었다. 시간도 많은데 창작 활동을 조금씩 재개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틈날 때마다 엄마를 떠보는 나는, 엄마와의 카톡방에 그 사진을 띄웠다. 거기다 덧붙였다.


“엄마, 이 시 지금 보니까 되게 ‘네오’한 것 같지 않아?”


“나란 사람 자체가 좀 네오하지.”


“아니, 네오하다는 말까지 어떻게 알아?”


엄마가 말했다.


“내가 모르는 게 어딨냐.”


나는 엄마를 좋아한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는 엄마를 참 높이 사고 존경한다. 엄마에게 배울 점은 매우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엄마의 ‘네오(neo)함’이다. 그리스어로 ‘새로운(new)’을 뜻하는 접두어인 ‘네오-’는 주로 신(新)자유주의, 네오소울(Neo soul) 따위의 사조나 장르의 앞에 붙어 쓰인다. 그만큼 이 전에 완벽히 없었던 형태는 아니지만 시류에 의해 한 단계 더 나아갔으며 새로이 해석된, 다음 세대 또는 다음 버전의 그것을 뜻하는 말이다. 아니, 그런 것 같다고 지금 풀이해본다. 나는 엄마의 외양과 사상 모두 우리가 60대 여성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쉬이 상상하는 전형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카톡방에 링크로 떠도는 보수 유튜버의 방송 대신 젊은 리버럴들과 페미니스트들로 가득한 트위터 타임라인을 읽고, TV 채널 중에서는 아이돌들이 잔뜩 나오는 음악방송을 여전히 가장 좋아하며, 자라 세일과 넷플릭스 신작에 나보다 더 관심이 많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부모나 자식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일화를 들으면 십중팔구는 자식 쪽 편을 들고, 꿈을 가진 청년들이 좌절하거나 상처 받는 스토리에 가장 슬퍼한다. 엄마가 이십 년 전에 쓴 <익명 다중>이라는 이 시에도, 당시의 세태를 가장 최전선에서 보고 듣고 소화하고 스스로를 업데이트해왔던 엄마의 습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90년대를 추억하는 밈이나 레트로 인기가 유효한 요즘, 지금의 시점으로 다시 보니 이 시야말로 무척이나 ‘네오’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네오’한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궁금증과 호감을 느끼는 이들은 전부 비전형적이고 신선하고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새롭게 생각하는 것을 즐겨서,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으면서 재미를 주는 크리에이터이자, 자신의 성별과 예능인으로서의 역할에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어 보이는 ‘연반인’ 재재가 좋다. 지난 총선의 유일한 영화인 출신 당선자이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에 앞장서고 있는 30대 국회의원 장혜영도 좋다. 젠더와 국경을 초월한 음악적 확장을 보여주고 있는 아티스트 황소윤도 좋다. 고정적인 충성도를 요구하는 K-pop 팬덤 문법에서 벗어나 커다란 풀 안에서 언제든 유닛의 구성이 바뀔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의 NCT도 너무 좋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 ‘네오’한 사람들에는, ‘네오’한 어떤 작품이나 대상을 편견 없이 함께 좋아하거나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엄마와 앞으로의 시대의 익명 다중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어떤 이를 처음 알게 된 때를 추억해본다. 그를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그를 묘사하며, 나는 늘 이렇게 말했었다.


“그 애는 신인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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