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쌤의 지방공무원 일상
죽음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죽음은 늘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데도 우리는 모른척하며 살아간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그림자’로 비유되곤 한다. 늘 곁에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존재를 집어삼킬 듯 강렬히, 맹렬히 실존하는 그림자. 누구나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그림자를 접하게 된다.
1. 상사
국장님은 워크홀릭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평판은 극과 극이었다.
‘정말 배울 게 많은 탁월한 선배님이시다.’
‘너무 깐깐해서 아랫사람 고생시킨다.’
업무 외적인 면에서는 직원들에게 따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꼰대는 아니셨다. 대체로 긍정적인 평판이 많은 분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을 잘 챙겨준다는 미담도 많은 분이었다.
나는 교육행정 관련 부서에 있을 때 보고 차 국장님을 뵙게 되었다. 긍정적인 내용으로 보고를 드릴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때 하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및 교육지원청과 연계된 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몇몇 교육 사업의 중단을 놓고 학교 측과 팽팽한 갈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국장님께는 매번 갈등에 관한 보고를 드려야 했다.
보고서 단어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검토하시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양가감정이 들었다.
‘진짜 너무 과한 거 아냐? 그냥 결재해 주셔도 되는데...’
‘대단하다, 하루에도 여러 번의 보고가 들어올 텐데 매번 저렇게 하시나??’
몇 달 후에 나는 타 부서로 발령이 났고, 국장님을 뵙지 못했다. 그리고 약 2년 쯤 지났을까, 부고 문자를 받았는데 ‘본인상’ 문자였다. 보통 000의 ‘조모’ 이런 식인데...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국장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지병이 악화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마지막 병가를 쓰기 전에도 일만 하셨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30년간 고생만 죽어라 하고, 연금으로 가족여행 한 번 즐기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졌다. 만약 자신이 퇴직 전에 세상을 떠날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그 분은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대통령을 시켜준다고 해도 손사래 칠 것 같다.
공직자로서 지자체의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적인 삶을 사셨으니 국장님께 감사의 박수를 쳐야 할까?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거라고... 직원 내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국장님을 추모하며 존경한다는 댓글들이 수십 개가 달렸지만 난 차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분을 닮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2. 동료
이름과 얼굴만 아는 정도의 동료였다. 개인적으로 한 번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외부 세미나 자리였는데 당시 나는 아직 핫바리 직원이었다. 그녀도 비슷한 연배였을 텐데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가볍게 인사를 했다. 호감을 느낀 것도 아니고, 길게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분명히 그녀가 기억나는 이유가 있다. 너무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와도 눈을 못 마주치고 세미나가 끝날 때까지 대화를 제대로 나누는 사람이 없었다. 공무원들은 단체 세미나에 참여하면 대체로 교육 시간엔 쥐 죽은 듯 조용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왁자지껄 수다를 떨곤 하는데 그녀는 아무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곧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어느 날, 나는 출장을 다녀왔는데 청사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오늘 직원 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청사 옆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 그래서 응급차에 경찰차까지 난리가 났었다고. 나도 깜짝 놀라 그 직원의 이름을 물어봤다. 희미한 기억이 섬광처럼 뒤통수를 때렸다. 설마... 떨리는 손으로 직원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확인했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심리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정말 마음이 아픈 건, 그녀는 내가 보았던 세미나 자리에서처럼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외롭고 불안한 마음으로 버티고 버티며 직장생활을 했으리라는 점이다. 왜 우리는 몰랐을까. 챙기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그때 조금 더 다가가 친해졌다면 어땠을까. 주변의 침묵이 그녀를 이 세상에서 뛰어내리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에게도 1%의 책임은 있지 않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직장 곁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던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저리고 시렸다. 어쩌면 그 경험과 자책감이 나에게 심리학을 공부하도록 자극이 된 건 아닐까.
3. 주민
코로나19가 한창인 어느 날, 난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갑자기 윗층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려와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부속 헬스장에서 사람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나는 동료들과 뛰어 올라갔다.
이미 헬스장 봉사자 및 주변 주민들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고, 구급차도 불렀다고 한다. 중년 남성이신데 혼자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바닥에 누워 있는 그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쓰러진 지 1~2분도 되지 않았다고 믿기 힘들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는데 그때까지도 의식이 없었고, 그분의 얼굴은 점차 보라색 빛으로 변해갔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구급차가 떠나고, 직원 몇 명과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동 업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거의 한시간 가량 대기하고 나서야 보호자가 뒤늦게 연락을 받고 뛰어왔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는 보호자를 뒤로 하고 우리는 그분이 제발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동으로 돌아갔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깨어나지 못했다.
며칠 후에 경찰서에서 나와 CCTV 조사를 했다. 경찰들은 심각한 얼굴로 몇 번이나 당시 영상들을 돌려보며 자세히 살폈다. 또한, 사건 당일 공무원들인 우리의 행적도 자세히 조사했다. 대처가 안이했다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했다.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적인 잘못이 없더라도 공무원은 늘 책임감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점이...
직장 생활하며 겪은 세 번의 죽음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동일했다.
죽음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라는 사실.
잘 살아보려고 한창 열심히 일하던 분이,
건강해지려고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분이 그렇게 갑자기 불청객을 맞을 줄 누가 알았을까.
죽음이 찾아올 때 후회하지 않도록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소중한 사람과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더 써야겠다.
가족과 친구가 소중하고, 독서와 글쓰기가 중요하다.
마지막 호흡을 빼앗는 그림자가 드리울 때
후회 없이 미소 지으며 떠날 수 있다면, 최고의 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