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드러난 교육불평등의 민낯을 마주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영외국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지금 저희 학교는 여러모로 바쁜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번 '조국 사태'로 인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9월 27일 예정된 중간고사 때문입니다.
이번 일은 그야말로 '조국 사태'라 정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장관의 따님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지금의 교육과 공정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이 글을 쓰게 됐을까요? '조국 사태'는 제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과연 공정한 입시제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조국 장관의 따님이 그토록 스펙을 쌓게 된 데에는 바로 '학생부종합전형'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각종 사교육과 특혜의 온상으로 지목된 특목고가 정말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누릴 수 없는 특혜와 사교육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 기득권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 딸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진 이후 "불공정한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지금 물타기 하는 거냐'는 지적부터, '불공정한 학생부종합전형 폐지하고 정시 100%로 가자'는 의견까지. 많은 시민들께서 다양한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한영외고를 비롯한 여러 특목고에서는 수업시간마다 발표를 시킵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채우기 위해서죠. 각 학교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한영외고에서는 '진로스터디그룹'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끼리 연구 주제를 잡고, 탐구를 하고, 소논문을 씁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 요소 중 하나인 '전공 적합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죠.
일반고에 재학중인 제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일반고에도 있느냐'고.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그런게 있겠냐?"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그래도 있긴 있어. 근데 아무나 못해. 학교에서 성적으로 애들 잘라서 시켜줘."
특목고에서는 당연했던, 모두가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일반고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가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된 것입니다. 대입에서의 출발선이 달라진 것입니다.
일반고에서는 1등급도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 진학)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특목고에서는 3등급 안이면 소위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고교등급제가 아직도 존재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나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생각해봅시다. 단순한 '암기식 교육'으로는 미래 사회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합니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자만이 미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발표와 질문을 통해서입니다. 발표를 통해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고, 질문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발표와 질문을 통해 생긴 궁금증들을 소논문을 작성하면서 해결한다면 진정한 '미래형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입시를 떠나서, 이런 점에 있어서는 특목고의 교육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학생이 이것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일반고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교육과정을 개편하면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그런 지적이 나옵니다. '특목고 학생들이니까 가능한 일이다'라고요. 제 친구도 이런 이야기를 물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왜 생겨난 것일까요? 특목고가 학생들에 대한 우선 선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목고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권인 우선선발권을 다시 일반고에 환원한다면 이런 '비극'은 금방 줄어들 것입니다(자사고·외고는 2019학년도 자기주도학습전형부터 우선선발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 '그냥 평등하게 특목고 없애고, 100% 일반고화 하자'라고요. 글쎄요, 이런 주장은 '서울대가 입시를 과열시키니 서울대를 없애자'는 정치인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불평등은 특목고가 존재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특목고가 누려왔던 특혜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특권들을 이제 정부의 의지로, 시민들의 의지로 일반고에 환원한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조국 장관의 따님이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고, 몇몇 봉사활동이나 인턴십 참가 사실들을 부풀려 적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이 의혹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더 나아가 불법이라면, 처벌받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렇게 끝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높으신 분들의 아들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만든 과거와 지금의 제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모든 어른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넓게, 거시적으로 바라봐 주십시오.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찾고 해결해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