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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서 Apr 16. 2022

상처와 흉터

세월호 참사 8주기에 부쳐

얼마  손등이 간지러워서 긁은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모기에 물리거나   아니라 종이에 베인 거였다. 약통을 열어 연고를 발랐다. 밴드까지 붙였다. 금방 물기를 바라면서.  간지러움을  이상 느끼지 않기를 바라면서. 상처는 며칠  말끔하게 사라졌다.

내 왼팔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갈색 반점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래 전 스테이크를 굽다가 기름이 튀면서 생긴 자국이다. 좋다는 연고란 연고는 다 발라봤지만 실패였다. 흉터가 남은 것이다.


상처는 금방 아물어서, 겉으로도, 속으로도 보이지 않게 된다. 흉터는 다르다. 흉터는 쉽게 아물지 않고 남아서, 그와 관련된 경험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TV를 보면 상처를 흉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사소한 것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흉터를 상처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사소하지 않은, 때로는 중요한 것들을 애써 덮어두고 무시하려 하는 것이다.


인간은 꽤나 간사한 동물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려 하고, 보고 싶은 것들만 보려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봐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애써 외면해도 결국엔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진실이 그렇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포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직 차가운 바다의 어둠 속에서 헤메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누군가는 아직도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 참사가 남긴 숙제들을 피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는, 또는 포기시키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 우리는 이것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직시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상처가 아닌 흉터로 남아야 한다. 차가운 어둠 속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빛이 끝끝내 승리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있는 이들에게 참이 끝끝내 승리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세월호 참사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직시의 대상이라고,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었다고,

가벼운 상처가 아니라 아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흉터로서 남고 또 남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다하지 못했으므로.


—세월호 8주기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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