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벽돌 Sep 25. 2022

나는 또 왜 이리 생겨먹었을까?-9

중년의 문제아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전까지 나는 병원보를 즐겨 읽지 않았다. 얼마나 자주 발행되는지, 며칠에 나오는지도 몰랐었다. 그러다가 원고를 청탁받고부터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 발행되는 병원보를 매번 구해서 첫 장부터 끝장까지 빼놓지 않고 읽었다. 다른 이들이 쓴 글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발행될 나의 글도 누군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읽어주기를 바랐다.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는 학생과 같은 절실하고도 간사한 마음이었다. 


첫 글이 담긴 병원보가 발행되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평소보다 무척이나 일찍 출근하였다. 병원 직원들을 위한 아침 식사 시간이 시작되는 때를 맞춰 직원 식당으로 내려갔다. 병원보는 직원 식당 입구에 가장 먼저 진열된다. 입구에 도착한 나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따로 볼 일이 있는 사람처럼 식당 입구 근처를 한참 동안 배회했다. 직원들이 내 글이 실린 병원보를 얼마나 집어 가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배가 고파 급하게 식당을 들어서는 직원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중년의 아재를 얼마나 이상하게 보았을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안해서 얼굴이 빨개질 지경이다.


주책맞은 아재의 절실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병원보보다는 밤새 주린 배를 채워줄 맛있는 아침 식사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식당 입구를 들어서는 누구도 진열대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첫 번째 병원보를 집어 드는 주인공이 되었다. 식당으로 들어선 나는 식판에 급하게 밥과 반찬을 떠 테이블로 가져갔다. 지나친 흥분감 때문에 배고픔도 잊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에서 멀뚱멀뚱 글만 읽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밥을 먹는 척하면서 내 글이 나와 있는 부분을 허겁지겁 찾았다. 오... 정말로 내 글이 실려 있었다. 의학 논문을 제외하고는 근 35년 만에 처음으로 내 손으로 쓴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과분하게도 제목 옆에는 글쓴이의 사진까지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정말이지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그날 아침은 기쁨의 눈물에 젖은 밥을 콧구멍으로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실린 글이에요. 지금 다시 봐도 설레네요.^^


어차피 아침 식사는 관심 밖이었다. 몇 숟가락 뜨지도 않고 식판을 물렸다. 허둥지둥 소중한 병원보를 품에 안고 방으로 올라왔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나는 앉은자리에서 내 글을 20번 이상 읽고 또 읽었다. 쓰고 고치느라 수없이 읽어본 글이지만 독자로서 읽어보니 새삼스레 새롭고 재미있었다. 아마 당시 심박동 수가 200회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혈관 속으로 쏟아져 나온 과도한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못된 습관이 고개를 쳐들었다. 멍 때리면서 공상하기 말이다. 나는 곧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는 조금 실망스러웠어.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직 직원들이 몰라서 그렇지 누군가 내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병원보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다고 소문을 낼 거야. 그 소문은 곧 입에서 입을 타고 퍼질 것이고.... 그러면 모든 직원들이 병원보를 구하기 위해 식당 앞으로 몰려들겠지. 진열된 병원보는 금방 소진될 것이고 홍보팀은 몇 번이나 더 부족한 부수들을 인쇄해야 하겠지. 아마도 사상 최대 부수를 발행해야 할지 몰라.... 음... 이건 조금 미안한 일인데.... 내 글로 인해 병원보 발행에 큰돈을 들여야 하는 홍보팀이나 원장님에게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재미있는 글을 읽고 직원들의 사기가 오른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일이니까. 그래, 오히려 잘 된 거야."


동료 교수가 좋은 글 잘 읽었다고 연락을 줄지 몰라 온통 전화기에 신경을 쏟으면서 내키지도 않는 일을 하는 척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 외래를 내려가기 전 나는 일부러 진료실이 있는 1층을 지나 지하 1층까지 내려갔다. 식당 입구의 진열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평상시와는 달리 손목에 차고 있는 만보계의 걸음 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외래 중간 비는 시간에도, 점심, 저녁 시간에도 심지어는 퇴근하는 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지하 1층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운동량에 무관하게 실적은 비슷하였다.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았는지 쌓여있는 병원보는 별로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서강학보


**원래 이런 목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아닌데 또 제 갈 길을 벗어났네요. 그러다 보니 제목과 글의 내용이 잘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조울증 걸린 사람마냥 글의 무드도 오르락내리락하고요. 뭐, 이제는 다 아시겠지만 제가 브런치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즉흥적인 영혼의 소유자라서 쓰고 있는 글들에서 일관성이나 연계성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쯤은 그런 걸 바라는 분도 많지 않으실 것 같고요. 하지만 이 시리즈 마지막쯤 가서는 원래 쓰려는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독자님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뻘쭘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또 왜 이리 생겨먹었을까?-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