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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Sep 26. 2022

나는 또 왜 이리 생겨먹었을까?-10

중년의 문제아

지하 1층으로의 부산한 발걸음은 그 후로도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평소 챙겨 먹지 않던 아침 식사를 비롯해 삼시 세 끼를 거르지 않고 직원 식당에 들렀다.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는 것이 얼마나 급했던지 그 소중한 체중 관리까지도 포기했다. 그때 찐 살이 아직도 안 빠지고 있다.)  물론 식사를 시작하기 전, 수 분간 식당 입구를 서성이는 것은 빼놓지 않았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사실 끼니를 챙기는 것은 안중에 없었다. 식당 입구 진열대 감시가 주목적이었다. 간간이 병원보를 집어 드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무심히 그것을 넘겨보다가 내 글이 나오는 페이지에 시선을 멈추는지 관찰했다. 아주 가끔은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최초 발견자'들이 동료들에게 인기 많은 '인싸'이자 인플루언서이길 기도했다. 그들이 곧 자기 자리로 돌아가 높은 톤의 목소리와 큰 몸짓으로 "새로 나온 병원보에서 엄청나게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어. 이거 한 번 읽어봐. 어서."라며 주변에 과장된 소문을 내주길 빌었다. 그래서 내 글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들이 객관적으로 내 글을 평가해주길 원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겠다. 애초부터 자존심 같은 것은 없었다. 35년 만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렵게 쓴 글이 혹독한 평가를 받길 원치 않았다. 사심이 가득한 입 발린 소리라도 우호적인 피드백을 받길 바랬다. 


제가 한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렀던 직원 식당 앞 병원보 진열대예요. 오늘 아침  급하게 사진을 찍어 왔어요.


나는 몰래 써 둔 글 몇 편을 뒷짐에 쥐고, 숫기가 없어 한참을 재다가, 이제 막 그중 첫 글을 소개한 사람이다. 그것도 한정된 독자들을 상대로 말이다. 그런 사람이 지나치게 솔직한 평가를 받는다면 더 이상 글을 쓸 용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35년 간 온몸이 마비되어 누워만 있던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벽을 짚고 겨우 일어나 새로이 걸음마를 시작하려 하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뭐야, 그것밖에 못해? 왜 그리 이상하게 걸어?"라고 지적한다면 그 환자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비록 첫 발자국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래, 잘하고 있어. 힘들겠지만 곧 잘 걷게 될 거야."라고 응원해준다면 그는 휘청거리는 다리에 한번 더 힘을 주고 어쩌면 달리기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뻔뻔하게도 나는 최초의 독자들에게 그런 인자함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그것을 표현해주기를 바랬다. 


높이 쌓여 있었던 병원보 뭉치는 조금씩 줄어들었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매일 아침 내가 하나씩 더 빼내 온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랬다. 조바심이 난 나는 매일 아침 슬그머니 한 부씩을 더 빼내어 아내에게도 전해주고, 부모님에게도 보내드리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포 속도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달팽이에게 목줄을 매고 산책을 시키면 딱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끌고 가는 내 마음은 한 걸음인데 따라오는 달팽이는 하세월이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고, 그래도 못 가면 말지”라는 심보랄까? 원래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약 1주일 동안을 그렇게 질척댔다. 


무반응은 악담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병원보 뭉치도, 나를 대하는 직원들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병원은 지나치게 평온했고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더 이상 신경을 쓰다가는 중년 아재의 건강에 예측할 수 없는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다행히 좌절하지는 않았다. 신포도에 혀를 덴 여우처럼 나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 글이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수준이 높아서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야. 지난번 출판했던 책들도 그랬잖아.... 나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언제까지 이런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거야?... 그래, 이제 내 할 일을 하자."

헛된 기대를 잘 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역치를 넘어서면 포기도 빠르다. 깔끔히 미련을 접고 병원 생활에 마음을 쏟기로 했다. 그렇게 약 2주 정도가 지났던 어느 날이었다.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서강학보


**쓰다 보니 그 당시 제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부끄러워지네요. 아마 지금까지 제 아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평생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회상하며 글을 쓰다 보니 지나치게 솔직해지네요. 독자님들도 덩달아 부끄러워지시겠지만 참고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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