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쟁이 Jun 23. 2023

치유

뜻밖의 선물(8)

기억은 죽지 않았다.

아이는 그날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곰인형 꼼이를 잃어버렸던 그 순간을...

그리고, 꼼이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소멸의 성에 들어온 기억들은

모두 소각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지만 혹여...

지워서는 안 되는 기억을 지우게 되는 일이 없도록

마지막 확인 과정을 거친다.

꼼이의 기억이 그러했다.

소멸의 성의 성물인 나비가

또 다른 성물인 고양이 조각상 가까이 날아올라

눈을 맞춘다.

조각상의 보랏빛 눈동자가 반짝인다.


이 기억은 이곳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기억이었다.

실수란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옥색 항아리엔 기억 조각들이 떠 다닌다.

그리고 제 자리를 찾는다.


이제 꼼이는 아이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대장은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꼼이가 자신처럼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누군가의 호의를 기대한다거나

아님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존재이기를 바라느니

내 멋대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꼼이를 간절히 원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대장은 그 누구보다 더 기뻤다.

그들은 모두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크리스마스인 오늘

소각을 위한 커다란 화로를 통과하면

내일 아침 꼼이의 집에 닿을 수 있다.

온이는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온이는 세상에 먼지처럼 흩어지는 기억들을

모아야 하니까.



마침내 도착했다.

위풍당당한 저 발걸음을 보라.

문이 굳게 닫혀있다.

'똑... 똑똑'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려 하지 않는 것들을 보려 하고

어른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것들을 들어보려 한다.


들었다. 대장이 부르는 소리를.

"앗! 꼼~ 내 곰인형!"


"엄마! 꼼이 왔어요. 스스로 집을 찾아왔다니까요?"


"꼼아! 안녕!"

대장은 이제 다시 혼자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본다.

어쩌면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안대가 사실은 쓸모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각 기억의 성 안의 자작나무 숲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호수 건너 작은 오두막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좀 더 밝아졌다.

어쩌면 대장에게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주 할 용기.

그리고 그 기억이 어떠하든 그다지 개의치 않을 거 같다고 보라색 고양이 대장이 말한다.




* 2022년 11월 초에 그리기 시작해서 올해 4월 초까지 그렸습니다.

그 사이 엄마를 잃기도 했습니다.(2월 5일)

소멸의 성 그리기를 끝내고

30여분 뒤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던 거죠.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도 여러 일들이 생겼습니다.

홀로 남은 연로하신 아빠를 살피야 하는 일까지...


요즘은 손그림을 그립니다.

사실 손그림을 그릴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다 생각해서

저만치 미뤄두었더랬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엄마가 제게 주신 교훈.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일기와 가계부를 쓰셨습니다.

전혀 모르셨던 거죠. 당신이 그리 될 줄을...

어쩌면... 어쩌면...

저만치 미뤄 둔 몇 년 뒤라는 시간이

내게 없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복잡한 상황이지만 조금씩 시간을 내어 손그림을 그립니다.


그림과 함께 적은 이 글은

제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생각했던 이야기의 대강의 줄거리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내어 다듬어야죠.

그게 언제 일지는 모르겠어요.

지금은 매일매일 정신없고 매일매일 바쁘거든요.

피신하듯 그림을 그립니다.

다음 글부터는 저의 손그림을 올릴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