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을 그리다
놀잇감이라고 해야 특별할 게 없었던 시절,
주변에 널린 자연물들을 장난감 삼아 노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그때,
입이 딱 벌어지게 부러운 놀잇감을
가지고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검정 고무줄'.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제법 기다란 고무줄을
가지고 다녔다.
아마도 언니에게 물려받았지 싶다.
그 친구들은 실력까지도 물려받아서
고무줄 뛰는 솜씨가 서커스단 저리 가라였다.
제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고무줄에
바람보다 빠르게 체조 선수 못지않은 유연성으로
다리를 두어 번 휘감아 발밑에 깔고
이리 뛰고 저리 날며 재주를 부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고 부럽던지.
음... 나는 그 틈에 끼지 못했다.
키도 작았고, 언니도 없었다.
손에 여러 번 감고도 충분히 기다란 고무줄도 없었다.
게다가 애살 좋은 편도 아니라 "언니! 언니!" 하며 따라다니지도 못했다.
그때 나의 가장 좋은 놀잇감은 조금은 두꺼운 종이였다.
얇은 도화지든 그보다 두꺼운 마분지 도화지든
종이만 있으면 한참을 놀 수 있었다.
아주아주 드물게 종이 박스(내복 상자)라도 생기면
평면으로 놀던 종이 놀이가 입체가 된다.
한켠에 꿈으로만 꾸었던 침대도 만들고
말로만 듣던 소파도 만들어 놓고
마치 내 방이라도 되는 양 설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나의 판타지였던
종이로 만드는 세상을 그린다.
평면의 종이에 약간의 높이를 느낄 수 있도록
구조물을 만들고
버려지는 골판지 상자를 잘라 덧대어
입체감을 표현한다.
33 x 33cm 크기의 그림의 밑판은 재활용 패널이다.
작년에 20년도 더 넘게 사용했던
MDF 공간 박스를 치웠다.
버리려고 해체했는데 막상 버리려니 아깝더라.
비록 MDF이기는 하지만 나무가 주재료인데 싶어서...
(나무로 만든 물건들을 버리는 것은 꺼려진다.)
그래서 조금은 미련하지만 한쪽에 잘 쌓아두었다.
생각보다 빨리 활용 방안을 찾았다.
그 패널 위에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
채색이 수월하도록 젯소를 발랐다.
종이 위의 그림은 수채화 물감과 유성 색연필로 그렸다
그리고, MDF패널 위에 그려야 하는 배경은
아크릴 물감으로 그렸다.
그림 속 시간은 크리스마스 전날 해 질 무렵이다.
네온으로 반짝이는 번화한 도심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반짝반짝 스와로브스키 스톤을 구입해서 하나하나 붙였다.
배경만 그릴까 사람들도 그려야 할까
고민고민 하다가 그리기로 결정.
아니 그려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하나하나 만든 요소들을 보드에 고정하는 마지막 작업 과정은 떨린다.
딱풀과 순간접착제를 이용해서 붙이는데
실수를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된다.
이 그림은... 맞다.
보라색 대장 고양이와 곰인형 꼼이가 나오는 이야기의 첫 장면이다.
아마 2주 넘게 작업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려도 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쉬이 끝을 내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