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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ak Jan 13. 2022

"비거 스플래쉬" 루카 구아다니노, 2015

"A Bigger Splash" Luca Guadagnino, 2015



찬란하고 무한한 햇빛 아래,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위한 손길과 눈빛은 욕정보다 애정이 더 강하다. 그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처럼 자유를 느낀다.

둘만의 평화로운 일상에 침입자가 등장한다. 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매혹적인 페넬로페와 함께. 그녀는 혀를 낼름거리며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셋의 감정선을 예의주시한다. 말로만 들었던 얽히고설킨 셋의 관계가 흥미진진하다. 아름다운 햇살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불편한 감정이 나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신나는 음악과 밝은 분위기 속에서 얇은 실처럼 이어지는 서스펜스가 신선한 묘미였다.

메리앤은 이전의 영광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끄집어내는 해리와 시간을 보내며 차츰 추억 속 욕망에 빠져든다. 스타의 삶을 누리며 거친 행동과 마약을 일삼았던 과거의 모습과 현재 폴과의 안온하고 권태로운 일상 속 그녀의 세련되고 고고한 모습이 대조된다. 


메리엔은 모든 인물의 중심에 서서 그녀에게 몰려오는 스플래쉬를 관리한다. 그녀에 대한 미련과 욕정을 가진 해리, 유서에 메리앤의 이름만 남길 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폴, 그런 그녀를 견제하는 페넬로페, 그녀를 선망하는 몇몇 마을 사람들까지. 그녀는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미소와 목소리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어쩌면 자신에게 던져지는 여러 파동을 부딪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영장처럼 그녀의 은밀한 욕망은 페넬로페보다 비밀스럽고 해리보다 솔직했다.

그녀는 모두에게 친절한 미소로 응했지만 이는 선한 배려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닌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석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리앤의 행동은 살인을 고백하는 폴을 안아줄 때 확실히 드러났다. 해리가 몸싸움을 하기 전 모든 인간은 서로를 역겨워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지켜낸 사랑이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은밀한 영역을 지키기 위한 행동만 반복했다. 아마 그들은 마지막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은 페넬로페의 함정에 빠져 서로를 의심하고 집착하는 하루를 견뎌야할 것이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주를 이루는 동안 영화는 TV나 라디오를 통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난민들의 삶을 옅게 조명한다. 이는 좋은 음식을 먹고, 늘어지게 자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주인공들과 상당히 대조된다. 애석하게도 다큐멘터리 감독인 폴은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난민들의 삶이 아닌 메리앤을 위해서만 카메라를 들었고, 메리앤은 난민들을 범죄자로 소모했으며, 페넬로페의 상실감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살인이 일어난 후 영화는 광활한 자연과 난민들이 타고 있었던 난파된 배를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일상에는 서로를 향한 욕구만 가득할 뿐, 난민들의 생존 따위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공간 아래 공존하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 영화 속이 아닌 내가 사는 이 곳에서도 매순간 일어난다는 것이 슬퍼졌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지구상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사랑을 한다고 느꼈던 나의 감상이 얼마나 단면적이었는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죄는 있지만 죄인은 없고, 사랑은 있지만 욕망은 숨기는 세상의 풍토 속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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