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ak Feb 14. 2022

"콜드 워"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2018

Cold War,  Pawel Pawlikowski, 2018

                


로맨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로맨스 장르를 즐기는 편이다. 그들이 맞이한 사건에 동참하여 조연이자 주인공으로서 함께 관계를 정의하길 좋아한다. 언젠가 누군가와 무한한 사랑을 누릴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영화 콜드워는 두번에 걸쳐 보았다. 처음은 빅토르의 시선에, 두번째는 줄라의 시선에 머무를 수 있었다. 

클래식 로맨스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이 영화는 솔직히 말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기어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글의 운을 떼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참 어렵다. 첫장면에서 노래를 부르는 원주민 아저씨들 뒤로 보이는 아이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바로 나였다.
그들의 사랑이 전혀 아름다워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그들의 순정적인 모습에 찬사를 보낼 때 이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니 스스로에게 있어 ‘나는 이상한 사람인 걸까? 인류애가 부족한가? 연애감정이 서투른가?’ 하는 물음표가 계속 떠올랐다.


둘의 삶을 결과론적으로 보자. 누가 저런 사랑을 하고 싶을까? 냉전시대가 아닌 현대의 사랑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마 서로에게 금방 질려 헤어지지 않았을까?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고 하기엔 그들의 사랑방식은 철저히 본인을 위해 계산되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빅토르가 기차에서 망명을 제안했을 때 불안해하는 줄라에게 “나랑 같이 있으면 되지. 난 너 없인 못 살아”라고 말한다. 너무나 이기적인 말이다. 그때부터 사랑의 모양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빅토르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랑꾼으로 기억되겠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계획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고 줄라도 마찬가지다. 

줄라는 두명의 남자와 결혼한다. 심지어 아이도 낳았다. 빅토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본인의 이념과 생업을 포기한다. 빅토르가 그녀를 인생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동력, 줄라가 그를 곁에 두기 위해 타인의 삶을 건드리고 배신하는 비도덕적인 결과치. 이 모두 영화에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며 보낸 시간 속에서 만들어낸 환상, 즉 미련이 주재료로 쓰여졌다.  

이 둘의 사랑을 "시대상과 규제를 뚫어내고 연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진정한 로맨스!"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 바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나치지 않는다. 요안나 쿨릭과 토마스 코트의 훌륭한 연기력을 통해 그들의 서사와 감정선은 이해되었지만 내 마음이 촉촉히 적셔지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을 연결지어 나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규칙과 규율을 중시하고 이를 파괴하는 어떤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간에 어떤 제도권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 규율화된 정답에 가까운 약속이며, 이를 뛰어넘는 양심에 속한 윤리의식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방식이 나를 설득시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배우로서 이런 관점에 머무른다는 것은 아쉽지만 반대되는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여러분들의 생각이 확장되길 기대한다. 

혈연도 아닌 생판 남을 평생에 걸쳐 끝까지 사랑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일일까? "콜드워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의 부모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이 만들어간 사랑의 모양은 우리 부모님과도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각자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모양이 참 어린아이 같아 한편으론 안쓰럽고 애틋하다. 내가 깊이 겪어보지 않은 영역이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과 저런 사랑이라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오른다.


그래도 이 영화의 재미라 한다면 독특한 화면비율과 인물의 배치, 명도의 효율적인 활용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집중 대상이 정중앙 하단에 배치해 상단의 여백을 줌으로써 자칫 불안정해 보일 수 있는 1.37:1의 화면에 안정감과 몰입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넣어준다. 

가장 흥미로웠던 시각적 요소는 바로 그림자였다. 빛과 어둠으로 만들어진 그림자가 인물의 표정과 관계, 냉전시대의 차가운 분위기까지 적재적소에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로 찍어서 합성한 것처럼 외곽선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장면도 더러 있었다. 이 다음에 흑백영화를 찍을 기회가 온다면 꼭 따라해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콜드워”의 주제는 내 스타일과 거리가 멀었지만 여러모로 두고두고 꺼내먹고 싶은 영화다. 연출적으로 과감한 생략과 만남 중심의 끊어지는 듯한 전개가 영화를 컴펙트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도 좋았다. 마치 이들의 프로파일을 영상으로 보는 느낌이랄까? 언젠가 다시 꺼내보았을 땐 부디 그들의 사랑이 가슴 깊이 공감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 사랑의 모양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작가의 이전글 "비거 스플래쉬" 루카 구아다니노, 20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