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ak Apr 09. 2022

"로제타" 다르덴형제, 1999

"Rosetta" Frères Dardenne, 1999


서울에서 살아보니 한 사람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공간, 물건 등 내가 벌 수 있는 수입보다 더 많은 소비가 있어야한다는 것을 매일 느끼는 중이다. 어릴 땐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서른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평범함을 유지하면서 자족하는 삶이 반듯한 마음가짐과 철학이 분명해야만 살아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느끼면서, 누구의 삶이든 평범함이 아니라 특별함이라는 것도 깨달아가고 있다.


로제타의 꿈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유럽에 사는 데도 불구하고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속해있다. 로제타를 부양해줄 엄마가 있고 짧은 경력도 있어서 실업급여도, 보조수당도 받을 수 없다. 로제타가 가진 노동력은 누군가가 더 이상 입지 않아 버려진 헌 옷처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흔해빠진 것이다.

우리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삶의 질이 올라가고 비로소 국민 대부분은 자신의 방과 차를 소유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웃프게도 남들만큼은 살고 싶고 또는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구로 인해 원룸꾸미기가 유행이 되고, 집은 없지만 차는 있는 카푸어(car poor)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는 실정이다. 기업은 성실함을 뛰어넘어 특출난 무언가로 가치전달의 능력을 가진 인재를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상을 발빠르게 맞춰가는 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도태된다.

단순히 열심히 산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정보와 복지정책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청년들의 꿈은 좌절되고 있다. 그러니 적당히 타협선을 찾아 흘러가듯 살아간다. 한국에 로제타가 참 많다.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나름 운이 좋은 축에 속하는 것 같다. 늘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손 내밀어 주는 이들이 있었다. 로제타에 비하면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로제타의 억척스러움이 부러웠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바삐 걷는 그녀의 뒷모습과 어딘가 화난 듯해보이는 무표정이 안쓰럽다고 하기엔 너무 멋져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고 보호받아야할 소녀라는 것을 알려주는 몇 장면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친절하게도 다르덴 형제는 희망과 절망의 장면을 붙여서 보여주었다. 엄마가 수놓아준 새 앞치마의 붉은 자수가 좋아서 옅은 미소를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몸을 파는 장면을 목격하는가 하면 늘 일에 치이다가 처음으로 또래와 놀며 행복이라는 감정을 되찾는 듯 보이지만 다음날 일자리를 잃고 만다.

로제타는 분명 작은 해프닝에도 웃을 수 있는 아이지만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가 너무나 가혹하다.

카메라는 어떤 사건이나 관계 중심이 아닌 로제타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녀의 걸음걸이와 호흡, 표정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마치 로제타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다. 카메라의 시선이 그녀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영화의 호흡을 따라가니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로제타의 삶을 자연스럽게 응원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친구도 생겼어

난 친구도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산다

난 평범한 삶을 산다

넌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난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잘 자

잘 자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꿋꿋하게 각목처럼 살아가는 로제타는 포기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리케로 인해 행복의 의미를 조금씩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리케에게 트레일러에서 자고 싶지 않다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 리케는 기꺼이 잠잘 곳과 더불어 일자리와 돈까지 공유해주겠다고 하지만 밀가루, 가스통, 엄마처럼 늘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는 것이 익숙한 로제타에게 그의 따뜻한 온기는 두렵고 낯설다. 결국 리케는 로제타에게 배신당하게 되고 그녀를 쫓아다닌다. 그의 오토바이 소리는 그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지 그녀를 친구로서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의 오토바이 소리는 위협적이기 보다 오히려 그녀의 삶에 기꺼이 동행하길 원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울지 않던 로제타는 수없이 속으로 삼켰던  눈물을 그의 두드림에 부응하듯 쏟아낸다. 그녀를 위로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흙탕에 발 묶여 사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함께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이자 행복인가. 리케의 삶도 녹록치않지만 이웃에게 마음을 쓰는 모습이 잠시 미루고 있었던 인류애를 꺼내보게 만든다. 내 삶이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외면하고 있진 않았나하는 양심 찔리는 생각이 나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어딘가 시원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거나 위로할 때 "네 인생의 주인공은 오직 너야!"라는 흔한 말이 있다.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로제타라고 지은 것은 세상 어딘가에 있을 로제타들에게 이 영화에서만큼은 네가 주인공이고 우리는 너를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콜드 워"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20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