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Michael Haneke, 2005
카메라는 관찰자의 시선에서 어떤 이들의 안온한 일상을 비춘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따뜻한 빛이 비치던 장소는 차갑게 식어버린다. 부부는 카메라가 있던 곳을 향해 불안하고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간다. 그들의 일상을 찍은 의문의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낙서가 그려진 엽서가 잔잔한 물결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킨다. 집으로 배달된 것으로도 모자라 직장과 아들의 학교까지 침범하며 그들의 목을 옥죄인다.
나의 시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편이 되어 범인이 누군지 색출해내고 있었다. 사이가 멀어진 프레데릭 부부인지, 용의선상 1번에 올라선 마지드인지, 아니면 그의 아들인지... 보는 내내 조르주의 절친이 된 것 마냥 ‘그래서 범인이 누군데?’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조르주의 비열하고 자기방어적인 태도가 분명히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이 ‘어느 정도는 정당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꼬집어준 장면은 어린 마지드가 파양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처절한 몸부림과 냉정하다 못해 폭력적인 어른들의 행동이 내 마음을 아프게 후벼팠다.
사실상 마지드가 조르주에게 끼친 피해는 하나도 없다. 마지드가 죽고 난 후에도 비디오테이프와 그림엽서는 계속해서 배달된다. 그의 아들이 찾아와 화장실에서 언쟁을 벌일 때 조르주는 마지드를 탓하지만, 그는 본인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조르주의 대사 중 “너는 나를 탓하고 싶은가본데, 네 아버지 인생이 그렇게 된 건 절대 내 탓이 아니야”는 “나는 너를 탓하고 싶어. 네 아버지 인생이 그렇게 된 건 절대적으로 내 탓이야”로 들려진다.
고작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어떤 두려움인지 모를 욕구에 휩싸여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고, 그런 비양심적인 욕구를 탑재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게스트의 말을 교묘하게 편집하며, 직장상사에게는 비굴했고, 약자에게는 한 수 위에 있는 것처럼 굴어댔다. 유명 교양프로그램 사회자라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하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충격적이다.
어린 마지드는 연약한 나라의 소시민으로 태어나 어른들의 부조리한 욕구로 인해 부모를 잃고 누군가의 음모로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 결코 쉽지 않았던 그의 삶을 그려보니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선한 마음과 사랑을 가진 이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 도덕적 양심의 현 위치가 드러났다. 요즘 내가 못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기보다는 자책하고 싶지 않아서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넘겼던 것 같다. 내가 조르주와 다를 게 없다.
되짚어볼 수록 절대 들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어떤 생각과 행동이 들킨 것만 같다. 어느 누가 나는 조르주처럼 산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교회에서 죄에 대해 설명할 때 드는 예시로 커다란 축구경기장 전광판에 나의 인생을 찍은 영상을 보여준다면 떳떳할 사람이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가 딱 그렇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어떤 류의 진실을 미화시키지 않고 명백하게 드러내는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요상하게 불편한 감정이 들게끔 한다.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피하지 못하도록 앉혀놓고 고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조차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 같기도 했다.
Hidden: 숨겨진.
마주하고 싶지않아 숨겨두다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나의 선한 마음과 나쁜 마음을 동시에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해준 이 영화에게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