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고 Jun 23. 2023

03_회사에 적응하기 힘든 두 가지 이유, 두 번째

신입사원 적응기

내 회사생활에 좋든 나쁘든 영향을 끼친 인물이 몇 명 있는데, 그중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의 두 번째 파트장 ‘k’를 기억에서 꺼내보려고 한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신규입사자를 위한 생산팀 내 체계적인 교육이 없었다. 명목상 OJT기간이 있으나, 실상은 멘토의 간단한 설명뒤에 직접 라인에서 부딪치며 배워야 했었다.


’ 생산팀 문제해결의 답은 현장에 있다 ‘는 기치아래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일을 잘한다라고 느껴지는 시대였다. 현장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일을 안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입사원이 해야 할 일은 일이 있든 없든 라인에 가야 한다.


라인에서 멍 때리고 있는지, 현장 직원과 무슨 트러블이 생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라인에 오랜 시간 있는 것이 미덕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두 번째 파트장 ‘k’도 그러한 사람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현장에 있는 시간이 길어야 했다. ‘K’와 일하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자 후배 사원들을 ’ 쪼는 ‘ 방식이었다.


하루는 현장에 있을 때였다.


K “어디야?”


나 “현장입니다.”


K “ A호기 무슨 일이야? “


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


…..


K는 전화를 안 끊었다. 왜 전화를 안 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해당 공정으로 이동하여 작업자들의 조치내용을 보고한다.


나 “현재 xxx를 조치하고 있습니다.”


K “원인이 뭐야?”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원인을 알려면 작업자들에게 물어보고 고민을 해야 하는데, 땀 흘리며 조치하기 바쁜 사람들에게 어떻게 물어볼 수가 있지?


나 ”현재 조치 중이어서 끝나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


드디어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조치할 수 없고, 작업자가 맞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며 의견을 내는 것이 다였다.


(그때는 사무직이 현장 설비를 만질 수가 없었다. 현장 설비는 오로지 현장 직원들만이 다룰 수가 있었다.)


5분~10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울렸다.


K “지금 뭐 하고 있어? “


나 ”현재 이러이러한 상황입니다. 곧 조치 완료될 것 같습니다. “


K “알았어”


그런데 기계가 그렇게 바로 고쳐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전화가 온다.


K “아직도 안 돌아? 너는 뭐 하고 있어”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그때부터 혼나지 않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나 “xxx 하고 있는데, 좀 길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할 말은 많지 않다.


K “그래 그럼 B호기는 무슨 일이야? “


A호기를 계속 보고 있는데 B호기를 물어본다. A호기만 보고 있었는데, B호기 내용을 어떻게 알까.


B호기로 향한다. B호기로 향하는 동안 역시 k는 전화를 끊지 않는다. B호기로 도착해서 상황을 간략하게 말한다.


알았다고 한다. A호기부터 챙기라고 한다.


뭐 그런 식이였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늘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길 원했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화를 내는 건 물론이었다.


후배사원들을 쪼기만 한다고 일의 능률이 오르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은 쪼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풀어준다고 술을 사주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었다. 시대는 바뀌기 마련인데, k는 과거에 머물러있었고 우리는 늘 k의 눈치를 살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파트의 대리님이 팀을 옮기게 되어 송별회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회식이 시작할 때부터 k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대리님이 팀을 옮길 때 파트장을 거치지 않고 본인이 옮기고 싶은 팀과 논의했기 때문에 화가 났었다. 나라도 말하기 싫었을 거다. 말하는 순간 팀을 못 옮기기 때문에..


뭐 여기까진 단순히 삐졌나 보다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진짜 화를 냈었다.


‘너 그 팀가서 잘되나 보자.’라고 느껴졌다.


아무리 기분 나빠도 다른 팀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송별회를 하는 시간에도 그렇게 후배 사원에게 화를 내고 기분을 드러내야 했을까.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된다.


자기 아랫사람이 팀을 떠난다면 서운한 감정이 앞설 수도 있으나 우선 석별의 정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떠나는지 이성적으로 물어보고 팀원들이 떠나지 않게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했을 때 자기 자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들 리더들은 외롭다고 하는데, ‘k’는 본인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 그 사실을 ‘k’는 알까?




회사생활 10년 차인 지금, 나도 후배 사원들을 이끌며  일을 하고 있다. 후배사원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을 만든 건 ‘k’이다. 좀 더 말하자면 ‘k’가 나의 리더상에 5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K의 반대로만 하면 된다.”


K의 반대로만 한다면 팀의 분위기도 살리고, 후배사원들에게 신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얼마 전 ‘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성공적인 팀을 만들기 위하여 ‘겸손, 갈망, 영리함’을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k’에게 없는 조건이 바로 영리함이다.


(여기서 영리함은 대인관계를 적절하게 다룰 줄 아는 사회성이다.)


‘K‘는 본인의 목적을 위하여, 본인의 기분대로 팀을 이끌어갔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신입사원인 내가 받은 충격은 쉽사리 글로 적을 수 없을 만큼 컸었다.


매일 ‘k’의 눈치를 보다 보니, 출근을 하면 매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멘털이 단단하지 못하여 웃으면서 넘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성격상 업무를 하면서 불합리한 점은 못 참고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k’ 앞에서는 긴장이 된다. ‘K’ 앞에서는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을 가리게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내가 사회생활 초년기 때 잘 적응하기엔 ‘k’의 벽이 너무 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2_회사에 적응하기 힘든 두 가지 이유, 첫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