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쟁이의 어떤 궤변
보지 않더라도 다정해지기를.
난 소심한 인간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인간의 성격을 기준하여 규정하고 분류하던 어떤 잣대들, 이를테면 혈액형 이라든가, 별자리, 십이간지 이런 것들을 맹신했던 것은 아니지만, 심심풀이 보디는 좀 더 깊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소극적, 내향적인 나의 성격이 A형이라든가 ISFJ라든가 하는 기준에 그대로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문의 전화, 배달 전화는 하기 전 속으로 수많은 예행연습을 해야 하며(심지어는 그닥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전화용무가 있을 때에도), 주문한 데로 제대로 음식이 나오지 않거나, 어떤 것을 환불받아야 할 때 제대로 의사표현을 못한다거나, 화가 났을 때도 제대로 화 한번 내지 못하고 그날 밤 그때 내가 그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하며 이불킥을 해버리는 등의, 지금이야 우스갯소리처럼 해대는 소심한 인간들의 고유한 특성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렇게 여지없는 극내향형인 나에게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는 정말이지, 부끄러움에 심장 두근댈 일 없는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다.
입보다 손가락이 더 바빠져야 하는 이곳.
조만간 있을 아빠의 팔순 잔치를 위해 식사장소를 검색하던 차에 괜찮은 곳을 발견해 날짜와 시간대 문의를 해야 하는데 자식의 도리에 앞서 또 문의전화 앞에 심장은 두근두근 또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물어볼 내용들을 정리해 업체와 통화를 하던 중, 직원의 단비 같은 한 마디.
"자세한 상담은 카톡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톡방 초대해 드릴게요"
이것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상담인가!!
카카오톡으로 시작된 상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의 문의에 대한 업체의 적절한 사진과 자료를 첨부한 답변들. 게다가 통화로 진행 되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작은 부분들까지 대화의 기록이 남아 있으니 찬찬히 다시 살펴보기도 좋았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녹취하여 복기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다시 들어야 하는 나의 목소리도 나는 견뎌낼 자신이 없다.)
이후로 이루어진 다른 업체들과의 준비들도 거의 대부분 카카오톡 문의상담으로 진행되었다.
스마트세상 만만세가 따로 없다.
음성이 없는 문자는 약간의 건조함과 냉기를 가진다. 문자로는 단순한 "응"이라도 어떤 억양으로 읽는지, 끝을 올리는지 내리는지에 따라 그 뜻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그러한 예다. 그렇기에 나는 문자를 보낼 땐 내 감정을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단어를 고르는데 더 신중하게 고민한다.
키보드 뒤에 숨어 얼굴을 숨긴 채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쓰레기 같은 말들을 뱉어내는 그런 우울한 인생들과 혹여 같은 모습으로 비칠까 더 고심에 고심을 하는 이유도 있다.
문자 하나에도 이렇게 고심하여 신경을 집중할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개중에 누군가는 힘들게 손가락으로 일일이 키보드를 쳐가며 할 말을 문자로 변환하여 소통하는 행위가 너무나 귀찮다며 그 시간에 통화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빠르게 뱉어낸 말들에 다신 주워 담을 수 없는 실언도 함께 담아보네 후회하는 이들 또한 많이 보았기에 나의 소심한 행위가 그렇게 답답하진 않다.
우연히 딸아이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보곤 흠칫했다. 문자창에 단답형이 오고 가는 그토록 싸늘한 공기라니..
"싸우는 거야?" 물어보니, "아니, 원래 이렇게 문자 하는데?"
"엄마가 너한테 이렇게 보내면 너는 화났냐고 할 것 같은데?"
하니, 생각에 잠기는 얼굴이다.
문자에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저 단답형으로 대답하기보단 평소에 하는 말투보다 0.5배 정도는 더 친절과 상냥함을 담아서 보내라고 조언해 주었다.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그 후로는 아이도 하고 싶은 싶은 말을 좀 자세하게 설명하듯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는 참 상냥한 거 같아. 하는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빠른 게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는 이 요지경 스마트 세상 속에서,
길고 늘어지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않기에 더더욱 더,
서로에게 다정해질 수 있기를.
오늘도 방에서 말대신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소심쟁이는 그렇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