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다.
밥을 짓는다.
반투명의 쌀알을 챠라라락 양푼에 담아 흐르는 물로 씻는다. 첫물은 얼른 따라 버리고 쌀을 씻은 물이 어느 정도 투명해질 때까지, 바락바락 보다는 휘휘 젓는다는 느낌으로 쌀을 씻는다.
백미취사를 누른다.
구수한 현미밥이나 톡톡 터지는 식감이 재미있는 귀리나 흑미밥,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콩밥도 좋아하지만 갓 지은 흰 밥알이 빽빽하게 차있는 모습은, 그렇게 보기만 해도 배부를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흰쌀밥이다.
어느 정도 꼬돌꼬돌한 밥알 하나하나마다 식감이 느껴지는 꼬들밥을 더 좋아하지만, 다수결의 원칙으로 우리 집 사람들은 잇몸으로도 부드럽게 뭉개지는 식감의 찰진 밥을 더 좋아해서 밥을 지을 땐 어느 정도 물을 더 잡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밥을 짓는다.라는 표현이 좋다.
만든다는 것보다 한 차원 더 깊은 느낌.
개화기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의 밥양을 보고 놀랐다던 외국인들의 일화처럼,
"밥 먹었어?"가 안부를 묻는 인사인 것처럼,
우리나라는 언제나 밥에 진심인 민족이기에 밥의 힘을 뱃속에 지닐 수 있게, 그 힘으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더 단단해지라고 '짓다'라는 동사를 뒤에 붙인 건 아닐까.
어찌 됐든 밥을 짓는다 라는 표현은 그저 만든다 라는 말보다 더 따뜻하고 더 배부르다.
"여러분 자신을 한 가지 음식으로 표현해 주세요"
선생님의 질문에 머릿속에 바로 흰밥이 떠올랐다.
'나는 흰밥이다.'
처음부터 나를 드러내기를 어려워하는 사람.
주인공으로 돋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만나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다 잘 어울리는 사람.
평범하고 무난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아예 없지는 않은 사람.
특별하지 않아도 어디에나 꼭 필요한 사람.
으로 살고 싶고, 살고 있는 나의 인생 모토와 흰밥은 너무나 맞아떨어졌다.
백반으로 먹어도,
덮밥으로 먹어도,
볶음밥으로 먹어도,
비빔밥으로 먹어도,
주먹밥으로 먹어도,
솥밥으로 먹어도,
밥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고,
어떤 것과 먹어도 어울린다.
나이를 들수록 밥을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고 밥을 건너뛰는 날엔 속이 어찌나 더부룩하고 불편한지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카테고리에 나는 너무도 깊게 소속되어 있다.
이렇게 좋은 밥.
정말이지 나는 밥 같은 사람이고 싶다.
물론 "넌 내 밥이야"처럼 누군가에겐 무시받고, 만만히 콩떡으로 우습게 여겨지고 하찮은 취급을 받더라도.
누구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로 인해 늘 든든하고 속이 편안하기를.
오늘도 나로 하여금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어 꽉 차게 배부르기를.
따뜻 하기를-
난 당신의 밥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