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신나게 아팠다.
남편에게서 시작된 몸살, 목감기가 이내 아이들과 나에게로 번져 넷이 다 같이 오손도손 따끈하게 열을 내며 지독하게도 아팠다.
코로나도 이렇게 다 같이 걸리진 않았었건만
코로나 재감염인지 독감인지 아데노인지 단순 목감기 인지 모를 (병원에서도 검사를 권하지 않아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다.) 지독한 바이러스가 목이 아프고, 열이 나고, 몽롱해지는 순으로 우리를 일주일간 못살게 했다.
해열제를 몇 통씩 비워가며, 밥 먹고, 약 먹고, 약 기운에 취해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또 약을 먹으려고 억지로 끼니를 때워가는 일을 반복하며 이것이 인간의 삶이 맞는 건지 자괴감이 들 때쯤에서야 한 명씩 천천히 아프기 전의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별안간 말끔한 목과 정신의 컨디션이 돌아왔고 그 덕분인지 갑자기 기력이 샘솟았다.
통증과 열을 견뎌내기에 바빠 포기했었던,
쾌적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인간이라면 해야 할 어떤 일들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픈 내내 흘려대던 식은땀과 씻지 못한 체취에 절은,
온통 바이러스가 잔뜩 남아있을 것 같은 이불과 베개커버를 모두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건조까지 마치고 다시 정돈한 침대에서 포근하고 은은한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청소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구석에 굴러다니던 머리카락과 먼지들의 집합체들을 깨끗하게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어지럽게 널려있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한다.
정리를 하다 보니 옷장과 신발장까지 손을 대게 되어 1년간 입지 않았던 옷들, 언젠가는 입을 것 같아서 남겨두었던(하지만 입지 않을 것이 뻔한) 원피스들, 남편의 빛이 바랜 셔츠들, 아이들에게 작아진 신발 등을 모두 정리한다.
또 언제 가득 차서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겠지만 정리한 오늘만큼은 계속 열어서 확인하고 싶을 만큼 말끔하고 정갈한 옷장과 신발장이다.
이제는 주부인 나의 공간. 냉장고를 정리할 때다.
아픈 동안 뭘 먹은 건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먹긴 뭘 먹었지만 미각을 위해 먹은 것은 아니기에 냉장고에도 온통 정리되어야 할, 사용기한이 한참이나 지나버린 반찬들 투성이다.
반찬통을 비우고 썪기 직전의 야채들을 버리고 나니, 냉장고 안에서 다시 빛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내 몸에 있던 나쁜 것들이 나를 아프게 훑고 나가버리고 나니 가뿐해진 것처럼, 우리 집에 있던 어지러운 것들을 땀 흘리며 정리하니, 건강한 식욕도 덩달아 돌아온다. 독한약에서 위를 보호할 수단으로써의 밥이 아닌, 맛을 느끼고 즐기기 위한 밥을 먹을 타이밍이다.
김밥을 말아먹기로 한다.
언제나 찬장에 자리 잡고 있는 김밥김과
냉장고를 정리하며 찾아낸 아직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당근, 오이, 졸여놓았던(다행히 상하지 않은) 우엉, 단무지, 부추.
둘째의 요청에 급히 만든 참치마요까지..
한데 모아보니 다른 때보다 더 풍성한 듯하다.
김에 간을 한 밥을 얇게 펴 재료들을 나란히 올리고 터지지 않게 한 번에 꼭꼭 말아 참기름을 윤기 나게 김밥등에 펴 바른다.
매끈매끈한 김밥들의 일렬횡대가 벌써부터 맛있다.
오늘은 김밥 밥도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10줄만큼의 분량이 되었다.
부엌일 하는 사람은 이런 재료의 딱 맞춤이 그 무엇보다 짜릿하게 신이 난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잘 썰어 접시 위에 김밥 탑을 쌓고 나면,
이제부터는 맛있게 먹으면 된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가늠도 안 되는 며칠동안,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이렇게 아프고만 있는 것이 싫고 답답하여 마음도 아픈 몸 못지않게 아프고 어수선하고 지저분하게 때가 꼈었다.
마음이 지저분하니 나의 일상도 더러워진 기분에 잠시나마 불쾌했지만, 하나하나 속을 비우고, 정리해 나가면서 너절했던 기분도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냉털 재료로 만든 김밥을 먹으며
비워져서 시원해진 냉장고 속 같이
내 안의 기분도 함께 개운해진다.
이제 다시,
건강한 것으로 냉장고를,
또 나를.
잔뜩 채워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