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dodok Jul 11. 2022

사랑에 대한 기억을 지워준다.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23

'특강'한다고 공지 문자가 왔다.


2학기 등록은 한참 뒷일이라 요즘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기승전 치킨'이라고 그것 비슷한 업종 5년 차에 들어간다. 엄청 피곤하다. 육체노동만 열심히 제공하면 무탈하게 돌아갈 줄 알고 뛰어든 순진한 내 불찰이다. 60이 훨씬 넘은 노쇄한 몸을 파스와 관절보호대로 중무장하고 12시간 육체노동은 기본 제공이다. 극한의 정신적 노동이 무제한으로 얹어져야 겨우 현상 유지된다.


치킨 비슷한 것 파는 게 뭔 대수겠냐고 묻지 마시라.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세상은 그런 막연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부수면서 돌아간다는 것을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 또 깨닫는 중이다. 프랜차이즈 말단 체인점을 꾸려보니, 중세 영주보다 파워가 센 프차 본사를 위한 농노 신세로 전락했다. 오히려 중세 임차농인 농노보다 처지가 못하더라. 지난날 경제관념에 아둔했던 업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참회를 하는 기분으로 가게문을 연다. 


요식업에 도전하고 싶어 하시는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건방진 사족이라고 욕할는지 몰라도 이 바닥 선배로서 한마디 하겠다. 특히 대학의 요식 관련학과 입학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고민 많이 하시기를 바란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청년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뉴스가 나오던데 참 우려스럽다. 또 어떤 청춘을 망가트리려고 성공확률 1프로도 안 되는 요식업에 끌어들이냐. 실패한 인생의 푸념이라고 무시하지 말아라. 대한민국에서 요식업은 이제 막장이다. 오직 프차 본사만을 위한 놀이터로 개편됐다.(글이 궤도를 이탈해서 한참 멀리 가버렸네)


문자 공지에 의하면 '방학특강'은 두 가지 과목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 장르 영화 구조와 이해/ 2시간 3회

하나) 시 창작의 실제와 도전/ 2시간 6회


당연히 두 가지를 다 신청했다. 대학에다 준 등록금이 얼마인가. 장학금이 일부 보전된다고 하더라도 그 큰돈을 내고 겨우 4개월도 못 채우고 종강했다. 슬그머니 본전 생각이 났었다. 수강료 없는 특강이라는데 아무리 생업에 바빠도 수강을 하기로 했다. 실시간 줌 강의다. 그러나 '장르 영화 구조와 이해' 수강 첫날 수업은 뭔가를 튀기다가 깜빡 놓쳐서 결강했다. 둘째, 셋째 날 참가했다.


결강한 첫날 수업은 "오페라"에 대한 것이었다.

둘째 날 수업은 한국 추리물의 역사에 대한 강의였다.


추리물, 어렸을 때 셜록홈스, 괴도 루팡 그리고 그 후엔 아가사 크리스트 등등의 책을 본 기억이 얼핏 난다. 따라서 한국 추리물은 60년대에나 와서 정착된 장르인 줄 알았고 번역본 추리물이 한국 탐정 추리소설의 전부인 줄 알았었다. 수업을 듣다 보니 일제 식민지 시대 때부터 탐정 혹은 정탐 소설이라는 용어로 추리소설이 존재했었다. 해외 탐정물(셜록 홈스 등) 번역출판은 물론이고 추리 장르물도 국내 작가들이 기명 혹은 무기명(채만식)으로 출간했었다.


한편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한국 추리문학은 식민지 시절에는 주인공인 탐정이 일본을 돕는 역할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탐정물도 변화가 많았다. 60-70년대에는 반공방첩 물로 착하거나 범죄를 뒤쫓는 '수사반장' 형태의 추리물이 인기였다. 특강을 통해서 탐정 추리소설의 역사와 추리소설의 구성과 시대에 따른 변화과정 등을 흥미 있게 들었다.


마지막 수업은 "SF와 로맨스의 결합"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교재다. SF보다는 로맨스 장르로 더 다가온다.


우리들의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 한때는 영롱하게 빛나던 사랑도 아주 사소한 계기로 하나하나 빛을 잃어가다가 결국 사라진다. 때론 크리스마스 날에 장대비 맞은 촛불처럼 어느 날 갑자기 종막을 고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시작했던 우리 사랑은 가장 소중했던 사람에게 날카로운 언어로 상처와 증오감만 남겨주기도 한다. 실패한 연애 앞에서 인생낭비라는 계산서를 뽑아 들고 참담해하기도 한다.


결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마음의 정리가 동반되지 않았을 때에는 까닥 모를 분노와 자괴감으로 모든 추억을 확 지우고 싶다. 그러나 반짝이던 조각을 떠 올리며 그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때로는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불완전한 우리가 이별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아무튼 이별이라는 벼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1) 지나간 사랑을 깨끗하게 다 지워버리는 것이 좋을까?

2) 따뜻했던 기억만 남기고 씁쓸한 기억은 지우는 것이 좋을까?

3) 연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알고 싶고, 때론 실행하고 싶었던 이 부분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정확하게 파고든다.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재조립이다. 우리가 청춘을 통과해 오면서 한번 혹은 몇 차례인가 고민했을 지점을 영상으로 보여줘서 흥미롭다. 남겨진 아픈 기억들을 전부 혹은 일부라도 지우고 싶어 했던 감정을 가져봤던 청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밸런타인데이가 얼마 남지 않은 날, 출근을 위해 주인공(조엘)은 역으로 향한다. "카드회사가 만든 밸런타인데이 날은 사람 기분을 엿같이 만든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감정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행사 기념일 같은 날들은 마음을 더욱 황량하게 만든다. 2월의 문턱에서 출근길을 걷어차고 찾아간 쓸쓸한 바닷가에서 백사장을 걷는 여인(클레멘타인)을 만난다. 우리는 서로의 매력 속으로 끌려간다.


이 사랑의 시작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평가할 수 없다. 나와 그녀는 첫 만남이 아니었다. 한때는 서로 사랑했던 연인관계였지만, 사랑에 대한 기억이 인위적으로 지워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끌림 속으로 빠져든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과거의 사랑은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러기에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처음부터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는 사랑의 기억을 지우는 또 다른 조연들이 등장한다.

1) 접수원: 기억을 지우는 회사(라쿠나)의 원장을 사랑했다. 불륜의 기억을 지우고 새 출발하려 했으나 또다시 원장을 사랑하고 만다. 

2) 라쿠나사(기억 지원주는 회사) 기술자: 여주인공(클레멘타인)의 기억(조엘에 대한)을 지우면서 얻은 정보로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재미있던 장면: 사족>

라쿠나사의 접수원으로 근무하는 메리는 원장을 사랑하게 됐으나 새 출발하겠다며 원장과의 불륜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웠다. 그러나 과거의 사랑은 지웠으나 사랑할 수 있는 감정만은 지우지 못했기에 다시금 원장을 사랑하게 된다. 원장과 메리의 애정표현을 창문으로 목격한 원장 와이프는 원장에게 말한다. "잔인하게 끌지 말고 말해줘!' 과거의 기억을 지웠었다고 메리에게 말해주라고 외친다. 그리고 메리에게 던지는 말 "너나 가져라 진작에도 그랬지만!"



생각할 지점:

사랑의 기억을 서로가 다 지우고 이별했던 연인이 처음처럼 우연히 만난다면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픈 사랑의 기억을 임의대로 지우고 다시 만나 시작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행복 출발을 할 수 있을까?


기술발전에 따라 기억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이별의 고통은 망각해야 도움이 되는 것인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오케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첨단 기술이 불러올 미래시대에 인간의 사랑이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망각의 기술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영화의 서사구조를 소설 쓰기에 참조할 것.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