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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Jul 25. 2022

문창과 부뉘기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25

1) 우와 전국에서 다 모였다.

기본 전공 시간 첫 무렵쯤, 입학하게 된 동기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전, 포천, 천안, 부산, 울산, 포항, 익산, 전주, 목포, 광주, 구미, 제주, 청주, 서산 등 전국 각지에서 왔다. 한 지역에서 거의 1명 정도가 각 시도 대표선수로 선발(?)된 것 같다. 오직 글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문창과에 입학한 것이다. 


내가 만일 학부형이라면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머나먼 타향으로 어린 자식을 보냈을까. 아무튼 본인의 의지도 대단하지만, 자식이 원한다고 멀리까지 유학을 보낸 학부형도 대단한 열정이다. 비슷한 꿈을 안고 전국에서 모인 덕분에 졸업 무렵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 같다. 젊은 날에 형성된 '인연' 이것도 잘 관리하면 평생 '인맥 재산'아닌가. 특히 업종 특성상 공채보다는 추천 특채도 많을 텐데 도움되지 않을까.


2) 이들은 언제부터 문창과에 대한 꿈을 키웠을까.

궁금해서 귀를 쫑긋하고 필기하면서 들었다. 영상세대라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글 즉 책에 대한 미련의 뿌리가 깊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문창과를 목표로 공부한 학생이 많았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습작하거나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나이 60이 넘어서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어린 친구들의 글쓰기에 대한 물리적 역사는 나보다 길고 깊었다.


한; 노래 부르기 좋아한다. 영화 드라마 작가가 꿈이다. 연; 특기는 웹툰 그리기며 출판사 근무가 꿈이다. 준; 내성적인 성격이다 웹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다. 민; 고1 때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타면서 생의 진로를 문학으로 정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다. 안; 배드민턴과 꽃을 좋아한다. 웹소설을 연재 중이다. 선; 글쓰기를 좋아한다. 출판으로 연결시키고 싶다. 근: 중학교 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출판 편집자가 꿈이다. 주; 혼자 소설을 읽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영; 중학 1학년 때부터 사랑의 시를 썼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푼다.


연; 영화를 보면서 역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훈련을 혼자 하고 있다. 산; 중 1 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운; 서사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영; B급 하위문화가 갖는 팩트의 힘을 믿는다. 은; 초등학교 때부터 심한 낯가림 덕분에 책 속에서 살았다. 자; 웹소설을 중학교 때부터 따라 썼다. 소; '시'를 죽을 때까지 쓰고 싶고 화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연; 그림 그리기 및 영상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태;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다. 등등


아직은 삶의 연륜이 적고 경험이 부족하기에 어설퍼 보이지만, 이 가운데에서는 미래에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인물이 한 두 명은 배출될 것이다.    


3) 취업이 안된다는데 왜 입학했니? 

"취업이 어려운 학과다' 강의 중 교수님께서 불쑥 실언을 던지신다. 조용하던 강의실에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감돈다. 열패감 탓일까 아니면 4년 후의 머나먼 이야기는 아직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탓일까. 강의실을 휘둘러보며 눈치를 보니 다들 코로나 방역 마스크 속에 표정을 감추고 있다.  30여 명의 학생들 중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교수님이 급 수습하신다.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마음껏 많이 노세요. 단 책을 많이 읽으면서 노세요"  


쉬는 시간에 주변의 몇몇 친구들의 심장을 저격해 봤다. 

"취업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각오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이상형 친구도 있고 "지원할 때부터 그런 걱정은 했습니다" "4년 후가 걱정됩니다"라는 극 현실파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된 의견은 "글과 함께 생활하려고 왔습니다"였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등 의무교육 12년 동안 얼마나 맺힌 것이 많길래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할까. 갑자기 한국 교육제도의 허점을 짚고 싶었다. 평생 '시'를 쓰면서 살고 싶다는 친구를 보면 그거 해서 밥벌이가 될까 걱정이 앞섰고, 출판사에 근무하고 싶다는 친구를 보면 '출판사 근무하려면 문창과보다는 국문학과가 더 낫지 않을까'하는 견해도 나누고 싶었다.    


4) 강의실 분위기는 데면데면하다.

남녀 성비는 2 대 1 정도다. 세어보지 않아서 정확한 남녀 숫자는 잘 모르겠다. 대충 30여 명의 입학 정원 중에서 남학생이 한 10여 명 되고 여학생이 한 20여 명 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강의실 분위기다. 나야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지라 어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젊은 친구들이 불편해할까 봐 웬만하면 말을 안 붙이는 편이다. 나야 의도적인 핵아싸라서 그런다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같은 젊은 또래 친구들끼리도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타 학과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다른 학과의 강의실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겠다. 나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면 우리 학과 학생들은 대다수가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다. 상당수가 한 학기가 다 가도록 교과목이 바뀌어도 자기가 처음 앉았던 자리를 고수하면서 매번 그 주변에 앉는 친구들하고만 대화한다. 겨우 30명 남짓 되는 강의실에서 주변 서너 명 심지어 한 학기가 다 가는데도 달랑 1명 하고만 대화하는 남학생도 있었다. 1학년 기본강의 시간표에는 팀 활동이나 조별과제 수업이 있어서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 그러나 과제가 끝나면 언제 봤냐는 듯 같은 공간에서 분리된 채 데면데면한다.   


물론 토론식 수업이나 조별 과제 발표시간이 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서로 발표하겠다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수업에는 매우 적극적이다. 물론 많지는 않지만 핵인싸도 있다. 몇몇 학생들은 매사 적극적이다. 교내 행사나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과대표도 서로 하겠다고 치열하게 경쟁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외향적인 열성인자를 가진 학생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다.


과 분위가 그렇다 보니 과대표가 고생하는 것 같다. 각종 학교 행사에 참가하자고 또는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고 카톡방이 불나도록 공지를 올려도 먼산 불구경하듯 댓글 하나 안 올린다. 과잠바를 단체로 맞추자고 닥달해도 신청자가 겨우 10여 명뿐이다. 그나마 어렵게 제작한 과잠바를 입고 다니는 학생은 달랑 하나였다. 전국 팔도강산에서 모여서 그럴 거라 이해하지만 한 학기가 되도록 분위기가 조용하다. 


22학번 단체 카톡방은 깊은 잠에 빠져있고, 오늘도 침묵은 금이라는 명제를 실천한다.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조금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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