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에서 모터로.. 전기차 1년 체험기
어린 시절 모터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남자아이들은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RC카 크게 만들어서 내가 타고 다니면 얼마나 재밌을까?’ 날렵한 몸매의 장난감 자동차 속에 들어가 굉음 없이 튀어나가는 기분을 느끼며 맘껏 운전하는 상상!
2020 원더키디는 실현되지 않은 지금이지만, 어린 시절의 모터카를 운전하는 상상은 전기차로 이룰 수 있었다.
작년 7월 가지고 있던 차를 처분하고 두 달 동안 무슨 차를 고를지 온 가족이 고민을 했었다. 장고 끝에 ‘현대자동차의 팰x세x드’ 로 굳어져 갔으나, 와이프와 아들은 유튜브로 T사의 전기차를 보고는 모든 결정을 뒤집어 버렸다. 난 예전 차가 RV여서 좁은 승용차의 불편함을 피력하였으나 결국 그 간절함을 꺾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덩치가 커진 모터 자동차는 우리 가족 곁으로 왔다.
전기차를 인수받고 와이프와 함께 집으로 가져오는 길.. 처음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당황스럽다. 그동안 자동차라는 물건에 익숙한 인테리어부터 다르다. 계기판과 스위치가 사라지고 모니터 하나가 전부 대신한다. 비상등 스위치도 백미러 부근에 달려있어, 한참을 찾아야만 했다.
난 자동차 매니아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차를 좋아하고, 튜닝을 즐겨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엔진음과 작은 떨림에 흥분한다고 한다. 그래서 투닝비용을 신차값보다 더 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차는 누군가에게 이동수단을 너머 나를 표현하는 무엇인가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전기차는 나만의 개성을 뽐내는 작품으로서 꽝일 수밖에 없다. 고작 외관이나 내부 정도를 조금 꾸미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심지어 전기배선 하나 맘대로 바꿀 수 없다.
전기차의 초반 순간 가속력은 놀랍다. 굉음 없이 바닥을 치고 순식간에 100km/h을 돌파한다. 놀이공원에서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느낄 정도다. 그런데 거기까지.. 100 중반 이후 가속력과 액셀레이터의 밟는 느낌은 확연히 떨어진다. 내연기관차처럼 탄력을 받고 치고 나가는 맛이 없다.
배터리가 차 바닥에 쫙 깔려 있는 형태라, 차의 묵직함과 핸들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전기차를 몰다가 차고가 높은 내연기관 SUV를 몰면 차가 출렁거리고 미끄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다른 회사의 전기차는 모르겠으나 T사는 자동차를 만들어 온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차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차의 외관에서 판판마다 단차가 조금씩 느껴지고 약간의 조잡함(?)이 느껴지는 마감 형태를 찾을 수도 있다. 내부는 너무 심플하다. 태블릿 pc 닮은 모니터 하나밖에 눈에 안 들어온다. 마치 옵션을 많이 덜어낸 차를 보는 듯하다.
모니터에서는 거의 모든 제어가 가능하다. 그래서 모니터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운전 중 세 번 모니터가 먹통 되는 체험을 했다. 전자제품이다보니 이러다 아예 제어가 안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 채워졌던 첫 경험이었다. 불안함과 다르게 모니터가 다운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재부팅이 되고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되니 차분히 차선 지키며운전하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심히 당황스럽다.)
완충을 한다면, 내가 몰고 있는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500km 정도라고 예상 거리가 나온다. 하지만 0%까지 운전할 수 없고, 배터리의 효율상 100%까지 충전하는 걸 권장하지 않아, 평상시 주행 가능 거리의 80% 라고 보면 된다. 500km가 가능하다면 수치상 400km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기차는 주차 중에도 배터리가 어느 정도 소모된다. 감시기능, 대기모드 등 완전히 배터리를 차단할 수 없다. 그리고 에어컨 히터 등 전기 장치의 사용은 주행 가능 거리를 확실히 떨어뜨린다. 결국 1년 동안 경험으로, 내가 생각한 500km 전기차는 300km 조금 넘게 사용 가능하다. 20% 남기고 충전한다면 200km 중반 정도 운행 후 충전을 해줘야 한다.
매일 왕복 40~50km를 주행하는 사람이라면 주말에 한 번 주중에 한번 두 번 정도는 충전을 해줘야 맘 편히 주행 가능하다. 결국 충전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받을 수밖에 없다. T사 전용 고속 충전이 가능한. 슈퍼차져라는 곳은 서울에 10군데 정도 있는 듯하다. 충전은 30분 정도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조금 시청하고 있으면 금방 충전이 된다. 하지만 그런 고속 충전 시설이 집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파트나 회사 등 자주 이동하는 곳에 한전에서 제공하는 완속 충전기가 있다면 전기차는 아주 저렴하게 충전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론 서울 기준 경기도를 벗어나는 거리인 150km 이상의 장거리 운행에서는 꼭 충전 시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우리집은 단독 주택이라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마당에서 220v전기를 끌어다 충전한다. 비용은 슈퍼차저든 한전 충전기든 비할바 없이 저렴하다. 보통 사설 충전 비용이 kw 당 280원에서 300원 정도인 반해, 가정용은 최고 누진세 구간에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180원 미만으로 충전 가능하다. 그래서 차를 인수받고 얼마 후 누진 구간을 한 단계 정도 낮추고자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 한 달에 태양광으로 평균 300kw 정도 생산되어, 완충 4번 정도 가능하다. 다만 가정용은 저압이라 220v*13A(최대) 한 시간에 2~3kw 충전된다. 30~50% 충전하려면 보통 15~20시간 충전시간이 소요된다. (사실 보통 긴 시간이 아니라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ㅜㅜ)
보통 공동 주택이나 공용 시설 충전기는 32A 기준이라 한 시간에 6~7kw 충전 가능해, 4~5시간 정도면 50% 이상 충전할 수 있다.
전기차에게 겨울은 혹독하다. 배터리 효율이 한참 많이 떨어진다. 운행 중 히터도 켜야 하니 주행 가능 거리는 현격히 줄어든다. 외부에 밤새 주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배터리 몇 프로 정도가 줄어드는 가슴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충전의 스트레스가 배가 되는 기분이 든다. 장점이라면 엔진 데울 일이 없어 따뜻한 바람은 빨리 나온다!
정부에서는 충전 시설을 대폭 늘려 전기차의 수요를 늘리고자 한다. 하지만 충전 시간의 압박과 공간의 제약, 갈수록 늘어나는 전기료는 전기차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킨다. 지금의 인프라에서 전기차가 조금만 더 늘어난다면 충전 때문에 자리싸움을 하고 충전을 못해 차를 놓고 출근하는 일이 빈번해 질지 모른다.
전기차는 정말 매력 있는 물건임이 분명하다. 탄소 배출 없이 이동하고, 원 페달 주행이 가능해 운전이 쉽다. (회생제동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엑셀에서 발을 떼는 순간 정지하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전기가 생산된다.) 핸드폰 업데이트처럼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초기의 핸드폰의 발전 속도보다 지금의 스마트폰 발전 속도가 빠르듯이 전기차의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감히 일이 년 후를 예상하기 힘들다. 자동차 모니터로 넷플릭스 시청과 웹서핑을 하는 지금의 모습은 더 이상 신기하지도 않듯이 몇 년 후의 전기차는 우리의 삶 자체를 바꿔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모터와 엔진.. 무엇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지금의 전기차는 초기 모델이고, 내연기관차는 완성형이다. 초기 모델의 불편함을 감수하느니, 아직은 완성형의 엔진의 출력을 느끼며 내연기관차의 매력을 더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