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종식, 그날을 기다리며..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고 하루에 수백 명이 매일 확진자가 발생할 때도, 정작 제 주변 가까이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왜 걸리는 걸까?’ 이런 얘기를 주변 사람과 나눌 정도로 코로나는 얼마 전까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동창들, 친인척 가족들 통틀어 1호가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한 겁니다.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안전 안내 문자’의 주인공이 되다니...
이태원, 홍대, 강남은커녕 요 몇 달 술자리 한번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업무상 만난 지인과 커피 한잔을 하고, 지인의 확진 소식 후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 격리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한 순간 해프닝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가 격리 첫날 받았던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습니다. 음성에다 몸에 이상도 없는데 굳이 한집에 사는 가족들과 분리가 돼야 하는지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다행히 거주하는 집 구조상 저는 2층에, 아이들은 1층에 거주할 수 있는 형태라 자가 격리를 좀 더 철저히 지킬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2주를 어떻게 버티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육아에 해방된다는 철없는 생각도 있어, 가족들에게 철저한 격리를 부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열 체크를 하고, 보건소에서 오는 자동 전화 설문을 받습니다. 쓰레기봉투, 마스크, 소독제 등 개인위생 용품을 소포로 받고 쓰레기도 가족들과 별개로 모아놓습니다. 격리 지원금 10만 원도 입금되어, 전투 식량 등 즉석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3~4일은 겪어보지 못한 생활을 하며, 나름 휴가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냈으나, 그 이후로는 집돌이를 자처하는 저도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약간의 근육통과 목의 깔깔함이 느껴졌으나, 열과 미각 후각 등은 정상이라 그냥 집에 오래 있어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자가 격리 기간의 종료 전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옵니다. ‘몸에 특별한 이상 있으신가요?’ ‘특별한 증상 없습니다.’, ‘검사받으실 필요 없으실 것 같고 다음날 12시 이후로 격리 해제하시면 됩니다.’
당일이 되어, 코로나 격리자 전용 쓰레기봉투를 조심스레 내놓고, 오후에 밀린 업무를 보러 출근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혹시나 찌뿌둥하니, 상쾌한 컨디션은 아니었기에 회사에 보고 후,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맡았습니다. 하루 더 자체 격리를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이면 음성 판정 문자를 받고 회사에 가서 동료들에게 자가 격리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에 설레기까지 합니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문자가 아닌 전화가 옵니다. ‘양성 판정되어 생활격리센터로 이송되셔야 합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 격리 2주를 채우고 또 격리라니.. 집도 아닌 격리센터라니..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와이프도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제가 철저히 자가 격리했다고 하나 완벽하게 동선을 분리할 수는 없었기에, 가족들 모두 밀접 접촉자로 2주 자가 격리해야 했습니다. 아이들 학교, 학원, 와이프 업무상 만났던 지인들에게 모두 연락을 하고, 보건소로 달려가 부랴부랴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보건소에서 생활격리센터 안내 문자를 받고 준비물을 챙깁니다. 몇 시간 후 집 앞에 도착한 앰뷸런스를 타고 집 근처 생활격리센터에 도착합니다. 영화에서 보았던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피해자가 된 듯 한 생각에 잠깁니다.
집 근처 생활격리센터는 도심 숙박업소를 개조한 건물이었습니다. 당일 날 입소한 다른 분과 2인 1조가 되어 트윈 베드에서 열흘간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동성과 24시간 최대 3~4미터 거리를 두고 계속 붙어 지내게 됩니다. 평생 살면서 이런 일을 겪게 되더군요.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전혀 친분이 없는 사람과 하루 24시간 열흘 240시간을 붙어 지내게 되다니..
격리센터에서 건강 체크 방송 두 번이 나오고, 식사가 문 앞에 있다는 방송이 세 번 나옵니다. 한방에 같이 있는 입소 동기를 제외하고는 열흘 동안 아무도 보지 못합니다. 소포는 검열 후 필요한 약 같은 걸 제외하고는 받을 수 없습니다. 담배도 당연히 필 수 없습니다. 강제 금연이 시작됩니다. 몸에 이상 징후가 없다면 별다른 치료나 약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콧물이 조금 나와 콧물감기약 두 번을 처방받았습니다.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듯이 격리센터의 시계도 돌아갑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몸에 이상이 없음을 유선 상으로 확인 후 혈압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반납하고 귀가하게 됩니다. 열흘 동안 함께 있어준 입소 동기와 반갑게 악수하고 서로 건강하라는 말을 남긴 채 각자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만나 불편 없이 잘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정치 얘기, 종교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입소 동기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끔찍하기만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냥 귀가하면 되지만, 이번에도 혹시나 몰라 보건소에 들러 검사를 다시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확진자 격리 후 퇴소 얼마 동안은 죽은 바이러스로 인해 양성 판정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전파력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저는 자가 격리 기간이 있어 음성 판정이 나올 것 같아 귀가 전 검사를 받았고, 다음날 음성 판정 결과를 수신했습니다.
거의 한 달간의 격리 생활. 가족들과 포옹하고 뜨거운 재회를 합니다. 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염병.. 정말 무시무시한 놈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생활격리센터 입소 전, 만약 제가 자가 격리 종료 후 보건소 판단에 따라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무증상에 음성이라 바이러스 보균자임을 저 조차도 알지 못한 채 회사와 가족 모두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한테 바이러스가 옮은 사람들은 어디서 걸린지도 모르고,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바이러스와 힘든 싸움을 했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무증상 보균자들은 우리 주변 곳곳에 있습니다. 마스크와 개인위생이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