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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파더 May 25. 2023

농구가 하고 싶어요

녹색 유니폼의 대방초 농구부를 응원하며

슬램덩크의 정대만이 안 선생님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1990년대 남자 청소년들은 마이클 조던의 등장으로 NBA에 열광했고, 슬램덩크 만화책이 그들의 참고서가 되었다. 때마침 대학 꽃미남 스타들의 등장으로 농구대잔치가 열리는 경기장은 여성 관객이 남자 관객보다 많은 진풍경이 펼쳐졌다. 지금은 배구에도 밀리는 비인기 종목으로 편입된 농구이지만, 그 시절에는 힙합과 댄스, 농구로 이어지는 젊음의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대만의 농구가 하고 싶다는 명대사가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운동에는 관심도 없던 아들은 90년대 농구를 경험한 아빠의 영향으로 그 많은 스포츠 중에 오로지 농구에만 관심을 보였다. 친구들이 메시와 손흥민에게 열광할 때, 아들은 스테픈 커리와 돈치치에게 빠졌다. 자연스레 보는 농구에서 하는 농구에도 관심을 보였고, 동네 스포츠 아카데미를 거쳐, 수소문 끝에 4학년 말, 대방초등학교 농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별다른 재능과 실력 없이 '농구가 하고 싶다'는 아들의 열정 하나만 보고 받아주신 고마운 곳이다. 그런 학교와 코치님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아들이 들어간 초등학교 농구부는 과거에 수회의 전국체전 우승과 소년체전 우승을 경험한 서울의 농구 명문이었다. 농구대잔치  흥행의 주역 전희철과 김병철, 그리고 얼마 전 은퇴한 레전드 가드 양동근, 명장 김승기를 배출하기도 했다. 대방초 농구부는 2001년 부임한 윤보웅 코치님의 지도아래  농구 열기가 식은 사회적 분위기에 상관없이 초등부 농구의 전통 강호로서 아이들과 숱한 영광을 또다시 재현해 나갔다.  




하지만, 관내에 중학교 농구부가 없는 아킬레스 건과 학교 주변 지역 재개발 영향으로, 몇 년 전부터 농구부 운영이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여파로 거의 모든 대회가 열리지 않고, 훈련마저 쉽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그 시점에 아들이 전학을 간 것이었고, 형편없는 실력에도 훈련 참석률만큼은 최고인 아들은 주전 멤버와 주장까지 할 수 있었다.


2022년부터 조금씩 하모니 리그, 윤덕주 배등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실력과 결과를 떠나 코트를 뛰어다니는 대방초 아이들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근사했다.  2022년 말 통영에서 열린 마지막 시합. 아직 단 한 번도 승리를 해보지 못한 녹색 유니폼의 아이들은 공식 대회 첫 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역전패를 당했다. 첫승이라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좋았겠지만, 아이들이 흘린 아쉬움의 눈물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시합의 사진은 너무 슬퍼 찍지 못했다. 바로 그전 게임을 지고 나서..




스포츠의 순 기능은 말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알고 있다. 건강한 육체와 정정당당 경쟁, 승패를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운다. 프로 선수라는 꿈이 없어도 하고 싶은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준 다면 공교육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런면에서 호주나 미국 등 여러 선진국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 공교육의 현실이다.

서울에는 이제 연가초, 삼광초, 삼선초 등 네다섯 개의 초등학교 농구팀만 남아있다. 상당수의 중학교 농구부는 스포츠 농구 클럽에서 부원들을 선발해 간다고 한다.  그리고 클럽 농구팀에서 농구를 배우는 아이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열정만 있다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실력과 돈에 상관없이 열정과 의지만 있어도 누구나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어린 시절 배울 수 있다면 아이들의 건강한 육체와 정신에 그 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80년대부터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며, 자리를 지켜온 대방초등학교 체육관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병설유치원이 세워진다는 계획이다. 재개발 재건축을 거쳐 학교를 둘러싼 아파트 주민들에겐 더 필요한 시설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논리가 행여 농구부 존폐에 영향을 미치지를 않기를 바란다. 비록 정식 농구 코트가 아닌 교실 위 강당에서 공을 튀길지라도, '농구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의 열정이 꺾이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대학 입시와 사교육에 치여 사는 아이들.. 갈수록 힘들어지는 경쟁 속에서 초등학교 때 만이라도 마음껏 공을 튀기고, 던지고, 뛰고 달려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미래가 곧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이듯, 아이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이 스포츠를 통해서 더욱 다듬어져야 한다.


그리고 훗날 대방초등학교의 녹색 유니폼을 입었던 아들의 후배들이 제2, 제3의 이충희와 허재가 되어, NBA의 코트를 휘젓고 다니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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