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내고 1년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무릎에 종기가 나서인지 제대로 걷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같으면 아이가 못 걸으니, 엄청 큰 병으로 여겼겠으나, 그때는 고약하나 바르고 그냥 낫기를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무릎에 구멍이 뚫리고 고름이 조금씩 빠지면서 약간씩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학교까지 걸어가는 건 좀 무리인 듯했다. 그 당시 누구나 그랬겠지만.. 학교를 빠지는 건 생각할 수도 없기에 엄마 등에 업혀 며칠을 학교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넓은 엄마의 등과 높았던 아이레벨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미안함보다는 창피했던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한 거리의 등굣길을 어린아이도 아니고 8살짜리 큰 아이를 업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였을 거라 생각된다. 바쁜 아침 시간 하숙생들 밥 차려주고 정리하고 아들내미 업고 학교를 보내는 일에,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으리라.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단둘이 병원을 모시고 온건 몇 번 되지 않는다. 아들한테 피해 줄까 싶어, 주로 누나 쉬는 날로 병원 진료일을 맞춰왔었다. 2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금세 다시 상태가 나빠져, 불과 며칠 터울을 두고 담당의를 만나야만 했다. 급하게 휴가를 내고, 다음날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들이 모는 차를 타고 가는 엄마는 그래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엄마는 항상 차에 타면 말을 많이 하셨다. 나는 뒷좌석보다 앞좌석이 좋다는 둥, 며느리랑 같이 타도 나는 앞에 탈거라는 둥, 운전 조심하라는 둥 엄마의 말은 끊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말수가 부쩍 줄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짧은 시간에도 엄마는 쪼그려 앉아 있는다. 병원 현관에서 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도 힘겹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몇 분 사이에도 의자에 몇 번을 앉는다. 그래도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싫지 않은 듯 간간이 웃는다. 담배 끊으라며 잔소리도 한다.
83년 나를 업고 학교에 갔던 엄마는 40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그렇게 병원 복도를 힘겹게...오고 간다. 하지만 다 큰 아들은 그때의 엄마처럼 업어주지 못했다. (후회만 남는다.... 모든 선택이 후회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눈에 찬 습기가 방울 맺혀 커질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