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과 유품
엄마를 보내고, 남겨진 건 많지 않았다. 평생 아끼고 아끼는 것이 당연한 듯 살아왔으니, 귀중품이나 탐날만한 물건 어느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엄마의 통장과 보험을 해지해야 해서 누나와 만나 은행을 돌았다. 몇 군데 은행을 돌아 예금을 해지하고, 우체국 보험을 청구했다. 돈 나올 데 하나 없는 사람이라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엄마는 10년간 20만 원씩 부은 만기 된 적금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또 다른 적금. 그리고 자식들이 보낸 용돈을 받는 통장이 전부였다.
참.. 알뜰히도 모았다. 어디에 쓸려고 했을까.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무엇을 예감했는지 나중에 애들 대학 갈 때 등록금 하라고 천만 원을 주셨었다. 눈물을 머금고 받은 그 돈이 다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용돈 통장은 온통 입금 내역뿐이다. 출금 기록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모아 또 주고 싶으셨겠지.. 그러면서 ‘엄마 대단하지!’ 하며 호탕하게 웃고 싶으셨겠지.. 가끔 누가 돈 많이 모았나 내기하자며 자신만만하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엄마가 위너였다.
엄마의 이름으로 된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엄마의 흔적이 못내 아쉽다. 언젠가 이 허전함과 허망함도 사라질까..
엄마의 작은 서랍엔 금반지 하나 없다. 동네에서 10년간 통장을 했다고 나라에서 받은 황금 열쇠는 10여 년 전 큰 아이 돌잔치 선물로 주셨었다. 본인 거라고는 어느 것 하나 없었다.
다만 35년 전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신 면도기와, 20년 전 프랑스에서 기념으로 사다 드린 10만 원짜리 스와치 시계 하나, 그리고 어린 시절 우리 남매의 이를 잡아 준 오래된 참빗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교통카드 한 장..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없다.
스마트폰도 없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저 교통카드로 더 다니셨을 텐데..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유튜브도 보셨을 텐데.. 손자 손녀 크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하셨을 텐데..
다음 생이 있다면, 엄마의 아빠로 태어나고 싶다. 그때는 엄마가 내 등골 많이 빼먹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