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민, 숨 고르기 (12)

자리 비었길래요

by 백운

관계도 감정도 대충 ‘관리 가능한 것’으로 분류해 두고 살았는데, 손을 놓는 순간 그 분류표 바깥의 녀석이 들어와 버린다. 노크도 없이, 무게로 존재를 증명한다. 연애는 대개 그렇게 등장한다. ‘너도 이제 좀 인간답게 살아봐’ 같은 얼굴로. 내가 원하든 말든, 마음이 준비되었든 말든.


그럴싸하게 말하면, 공백은 늘 어떤 실재를 호출한다. 그리고 그 실재가 하필 연애일 때가 있다. 마치 “자리 비었길래요” 하고 슬쩍 앉는 사람처럼.


나는 그때까지도 오만하게 생각했다. 그래, 나도 웬만한 건 겪어봤지. 그러니 이번엔 경험치를 바탕으로 성숙한 관계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돌아보면 웃긴 자신감이다. 성숙은 보통 둘이 같이 만드는 건데, 나는 혼자서 ‘성숙한 관계’를 짜 맞추려 했다. 설명서도 공구도 없이. 심지어 시작부터 안 맞는 부품을 손에 쥔 채로.


오만은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혼자만의 세계에 오래 머문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건 “나는 다 알아” 같은 노골적인 확신이 아니라, “나는 모른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야” 같은 방식으로 달라붙는다.


자, 이제 본론. 늘 그렇듯 시작은 우연이다. 철저하게 우연. 우연의 장점은 책임이 없고, 단점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6년 전의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게 생생하다. 그러니까 미화가 시작된 거다. 기억이란 건 참 친절해서, 불편한 디테일은 지우고 분위기만 남겨준다.


그날은 한여름의 열기가 빠져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섬 안으로 밀고 들어오던 초가을 밤이었다. 제주의 한여름은 습함이라는 불쾌함을 꼭 동반한다. 바람이 부는데도 끈적거려서, 마치 ‘시원함’이 아니라 ‘젖은 위로’ 같은 느낌을 준다. 공기가 살갗에 닿는 순간부터 “나 너한테 붙어 있을게” 하고 달라붙는 기분. 그 끈적한 공기 속에서는 옷이 아니라 기분이 젖는다. 밤인데도 어깨가 축 처지고, 바람이 지나가도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가벼움이 아니라 잔여감이다. 여름은 사람을 조금 느리게 만들고, 이 섬의 여름은 그 느림에 습기까지 발라 놓는다.


가을바람은 다르다. 어떤 날은 바람이 들어오면서 계절을 통째로 데리고 들어온다. 공기가 먼저 바뀌고, 그다음에 생각이 바뀐다. 가을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피부가 먼저 “아, 드디어”라고 말한다. 바람이 살을 스치는데, 이번에는 달라붙지 않고 ‘지나간다’. 지나가면서도 불친절하지 않다. 너무 차갑거나 뜨겁지 않게, 딱 필요한 만큼만 만지고 떠난다. 손등 위로 흐르는 물처럼 가볍게 방향을 바꾸며 흘러가고, 그 흐름이 지나간 자리엔 말끔한 공기만 남는다.


가을의 온도는 성큼 다가오지만, 섬의 기후는 늘 극단을 피한다. 확 꺾지도,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공기가 차가워지긴 해도 “야, 춥지?” 하고 겁주기보다는 “긴 옷 하나 챙길래?” 하고 조용히 권하는 정도다. 그래서 옷은 분명 두꺼워졌지만, 육지처럼 “겨울 준비해” 하고 등을 떠미는 무게는 아니다. 겉옷이 생겼다는 사실이 짐이 아니라, 몸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 쪽에 가깝다. 얇은 니트 한 장, 가벼운 후드 하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감각이 이상하게 마음까지 가볍게 만든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경계의 밤들은, 계절이 가장 그럴듯하게 속이는 시간이다. 하늘은 더 높아진 것처럼 보이고, 별은 유난히 뾰족해진다. 공기가 맑아질수록 멀리 있는 것들은 괜히 가까워 보인다. 소리도 조금 달라진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내는 얇은 마찰음, 먼 길에서 건너오는 차 소리, 누군가 웃다 멈춘 뒤에 남는 짧은 공백. 모든 것이 한층 선명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 선명함이 사람을 기분 좋게 속인다.


“지금은 뭔가를 시작하기 딱 좋은 때야.” 같은 용기를 계절이 슬쩍 손에 쥐여준다. 마음은 이유 없이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마음은 곧장 이유를 발명할 준비를 한다. 그날 밤이 그랬다. 공기는 정돈돼 있었고, 나는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넘어갈 만한 상태였다.


계절이 이렇게까지 완벽하면 사람은 자기 판단을 쉽게 신뢰한다. 사실은 그냥 날씨가 좋았을 뿐인데, 그 ‘좋음’이 사기 같은 상황을 불러들이기엔 더없이 알맞은 배경이 되어버린 밤이었다.


아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 특유의 ‘계획은 없지만 자신감은 있는’ 밝은 톤이었다.


“B야, 형 제주도 왔는데 너 어디 산다고 했지?”

“저 동쪽이요.”

“나 지금 어디 갈지 고민 중인데, 그쪽으로 놀러 갈까?”

“그럼요 전 언제든지 오케이입니다!”


말을 하고 나서도 나는 스스로가 좀 웃겼다. ‘언제든지 오케이’라니, 내가 무슨 24시간 편의점도 아니고. 그런데 그날따라 그 말이 이상하게도 입에 착 달라붙었다.


이 대화가 왜 이렇게 선명하냐면,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수정모드’가 아니라 거의 리셋 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땐 몰랐다. 내가 “언제든지 오케이”라고 던진 문장이, 나중엔 “언제든지 오케이였으면 좋았을걸” 같은 문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걸.


퇴근하고 샤워부터 했다. 피로가 물로만 씻기는 종류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은 물에 닿는 순간 잠깐은 새사람이 된다. 머리는 대충 말렸다. 아니, 정확히는 대충 말린 걸로 치기로 했다. 어차피 제주 가을바람은 드라이기보다 성실하고, 전기요금도 청구하지 않는다. 머리카락 끝이 조금 젖은 채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 지나가며 남은 습기를 조용히 데려간다. 자연이 주는 무료 서비스. 섬은 이런 식으로 사람의 생활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약속 장소는 동네에 새로 생긴 작은 펍이었다. 제주로 이주한 뒤, 나는 회사와 일상을 의도적으로 분리해 두고 살았다. 직장생활에 패키지처럼 따라오던 회식의 풍경도 그때 함께 지워졌다. 일은 일로만 남았고, 퇴근 후의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고요했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 술 한잔”이라는 말 자체가 어딘가 낯설고, 동시에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육지에서 회사 다니던 시절의 루틴이 갑자기 소환되는 느낌. 퇴근하고, 한 잔하고, 집에 가는 일. 그 익숙한 패턴이 여기서도 재현되니까, 괜히 속으로 ‘아, 나 아직 완전히 사회 밖으로 밀려난 건 아니구나’ 같은 쓸데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좀 우습다. 낙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소박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박함이 그때는 꽤 크게 느껴졌다. 삶을 대단하게 꾸미지 않아도 되던 때였고, 그래서 그런 작은 기쁨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묘한 기분에 조금 취한 채 가게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구석진 자리에 지인이 보였다. 반가웠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네? 옆에 사람이 더 있다. 아니, 더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작은 세계가 하나 형성돼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상황 분석 회의가 급히 열린다. 이건 무슨 전개지. 소개팅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2차의 세계’인가. 어쨌든 사람은 모르는 상황 앞에서 늘 비슷한 선택을 한다. 일단 자연스럽게 웃기.


손을 흔들었다. 설렘이 조금 섞인 채로. 설렘이란 게 꼭 누굴 좋아해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내 인생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것 같은 순간에도, 사람은 괜히 마음이 먼저 들뜬다.


“형, 와… 나 지금 반가움이 좀 늦게 올라오네요.”

“나도. 반갑긴 한데 동시에 ‘왜 이제야’가 같이 온다.”

“그러게요. 연락 한 번 하려고 하다가도 자꾸 미뤄졌어요. 제주 살면 하루는 조용한데, 지나가면 또 통째로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네가 조용히 사라졌구나. 연락도 같이.”


그다음엔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식의 의례적인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안부를 묻고, 근황을 확인하고, “어떻게 살았냐”를 주고받는 일. 이런 대화는 인간관계의 안전벨트 같은 거라서, 늘 매긴 하는데 가끔은 ‘이게 진짜 안전한 건 맞나’ 싶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의례가 오가는 동안에도 내 머리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문장이 또박또박 적히고 있었다. 제주에 살고부터 인간관계는 반쯤 강제로 정리됐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리가 관계의 모양을 바꾼다는, 뻔해서 더 씁쓸한 사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조금씩 뒤로 밀린다.


나는 그 문장을 믿고 싶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정작 그걸 가장 성실하게 증명하는 쪽이 나였다. “언젠가 연락하지 뭐”라는 마음은 늘 ‘언젠가’라는 단어 안에 갇힌 채 늙어버렸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그 단순한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사람은 조금 민망해진다. 바빴던 게 아니라, 그냥 게을렀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날은, 그런 자책조차 분위기 속에 얇게 풀어져 버렸다. 나는 일단 그쪽으로 걸어갔고, 구석 자리엔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 예상하지 못한 밤의 시작이 먼저 와 있었다.


“근데 이분들은 누구예요?”

“너 혹시 그거 알아? 여행 동행 구하는 카페 같은 거.”

“아, 그런 게 있어요?”

“응. 이번에 내가 너무 급하게 혼자 와서, 거기서 몇 분 만나 같이 다니고 있어.”


처음 듣는 종류의 모임이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익숙한 계산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모임 계산기. ‘그럼 나도 한 번?’ ‘근데 나는 여행객이 아니잖아?’ ‘여기서부터는 좀 애매해지는데…’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


“아… 그렇구나.”


나는 타이밍을 한 박자 늦춰 어색함이 드러나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주에 살고 있는 B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H예요. 휴가가 갑자기 생겨서 며칠 전에 급하게 내려왔어요.”

“제주는 또 그렇게 갑자기 오게 되더라고요.”

“네. 정신 차려보니 와 있더라고요. 옆에 있는 친구는 제주에 아는 지인이에요.”

“안녕하세요. C라고 해요. 저는 여행객은 아니고, 여기 살고 있어요.”


여기서 내 머릿속 계산기는 잠깐 멈췄다. ‘오케이, 상황 정리.’ 여행객, 동행, 카페, 급휴가, 재회, 제주 거주자(나).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연이 우연을 데리고 들어온 자리였다. 그런데 잠깐. ‘여기 살고 있다고?’ 방금 정리한 표가 다시 흐트러진다.


“H 언니랑은 육지에서부터 친했어요. 근데 제가 제주 오고 나서는 좀 뜸했거든요. 그러다 이번에 언니가 갑자기 여행을 와서, 이렇게 또 보게 됐죠.”


C의 말 한 조각, “제주에 오고부터 뜸하다가”가 이상하게도 뇌리에 박혔다. 문장 하나가 기억 속에 꽂히는 순간이 있다. 그건 정보라기보다 신호에 가깝다. 그리고 내 뇌는 그런 신호를 만나면, 평소엔 절전모드로 살다가도 갑자기 풀가동을 시작한다.


제주에 “오고부터”라는 말은 잠깐 들른 게 아니라, 생활권이 옮겨졌다는 뜻처럼 들린다. 뜸해졌다는 건 그 이동이 관계의 간격까지 다시 정리해버렸다는 말이고.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였다. 이 사람도, 나처럼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그 순간부터 마음속 계산식이 바뀐다. 낯선 사람이 같은 동네 사람이 되고, 대화 상대는 순식간에 친구 후보가 된다. 친밀도와 공감대가 동시에 올라간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건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같은 생활권이 잠깐 겹쳐 생긴 만남에 가까웠다. 그다음 행동은 아주 인간적이고, 아주 단순했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돌격.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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