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민, 숨 고르기 (11)

by 백운

…그런데 삶은 내 결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끝인 줄 알았던 몇몇의 관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파도가 한 번 지나갔는데도 누군가는 여전히 떠 있고, 누군가는 서로를 다시 발견하고, 또 누군가는 기어이 같은 방향으로 헤엄쳐 간다. 그게 좀 우습고, 또 고맙다. 끝이라고 믿었던 자리에서 누군가는 계속 살아 있었으니까.


결국 사람이든 기억이든, 뭐든 남는다. 물론 ‘남는다’가 늘 멋진 의미는 아니다. 어떤 건 사진처럼 남고, 어떤 건 흉터처럼 남고, 어떤 건 습관처럼 달라붙는다. 그래도 어쨌든 남아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또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래도… 아직 떠 있는 사람이 있네.” 하고, 약간 현자 흉내를 내면서도 안도하는 얼굴로.


다만 ‘남는다’가 끝은 아니다. 관계는 레고처럼 “자, 완성. 끝.” 하고 진열장에 올려두는 물건이 아니니까. 엮이고 풀리며 계속 모양을 바꾼다. 완성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물에 가깝다. 잘 지어놓은 줄 알았던 집도 바람 한 번에 창문이 삐걱거린다. 희한하게도, 어제까지 분명히 있던 문이 오늘은 잠겨 있고, 한참 돌아가던 길이 내일은 지름길이 되어 있다. 그래도 집은 집이다.


관계들이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건네는 선물처럼, 우리는 각자의 계절을 통과하며 작게든 크게든 달라졌다. 가끔은 추억을 꺼내 웃고, 서로의 변화를 신기해한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남아 있는 것들 앞에서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은 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가도,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도 또 맞다. 둘은 서로 모순되는 척하면서, 한 얼굴로 나란히 서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자주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그리고… 둘 다 맞다.


그럼 “첫 번째 모임이랑 뭐가 달랐어?”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결국 답은 이거다.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든 시간의 농도. 깊고, 오래, 서로의 안쪽을 열심히 어루만지며 많은 것을 나눴다. 그리고 그 ‘나눔’이 꼭 거창한 고백이나 인생철학만 가리키는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웃긴 얘기였고, 어떤 날은 말끝의 망설임이었고, 어떤 날은 “아… 너도 그런 쪽이구나” 하는 조용한 발견이었다. 책이 가운데 놓여 있긴 했지만, 사실 더 많이 읽힌 건 서로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보다, 대답하기 전의 침묵이 더 또렷하던 날들.


그 시기의 나는 꽤 맹목적이었다. 내 안에는 ‘뭔가를 채워야 한다’는 믿음이 거의 못처럼 박혀 있었고, 더 웃긴 건 그걸 채울 수 있다는 확신까지 그럴듯하게 들고 살았다. 채워야 할 대상은 분명 나인데, 정작 나는 내 안을 ‘나’로 채우기보다는 자꾸 다른 것들로 메우려 든다.


마치 내부 공사 중인 집에, 자재 대신 손님부터 들이는 기분으로. 물론 두 번의 소란을 지나왔다고 해서 의문이 깔끔히 정리된 건 아니었다.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또렷하게 배운 게 하나 생겼다.


“너, 사람 좋아하잖아?”

“좋아하지. 근데… 너무 많으면 힘들어.”


나는 사람들 틈에서 달콤하게 중독되는 타입이면서도, 빠져나가는 에너지도 큰 편이었다. 겉으로는 “와, 이 열기 너무 좋다” 하고 웃고 있는데, 속에서는 배터리 잔량이 눈에 띄게 내려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충전되는 줄 알았던 내가, 알고 보니 ‘급속 방전’도 함께 달고 살았던 거다.


또다시 인생 수정모드다. 나는 다시 고요한 성당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번 다녀온 길인데도 문턱은 매번 처음처럼 높다. 반복은 예상대로 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심심함도 다시 따라왔다.


다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심심함이 나를 찌르는 칼이라기보다, 둥글게 마모된 숟가락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프진 않은데 계속 떠먹여 진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내성이 생긴다. “아, 이 맛이구나.” 하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였다. 별 의미 없이 흩어져 있던 행동과 습관들이 어느 순간 패턴이 되어, ‘일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등장한 시기였다. 그때의 하루는 꽤 짧게 요약된다.


아침 기상(지독한 아침형 인간), 러닝이나 산책, 외출, 혼밥(본투비 혼밥러), 커피와 독서, 귀가해 저녁을 먹고, 남은 책을 조금 더 읽거나 영화를 보고, 잠. 거의 예외 없이, 이 순서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 안의 자아 하나가 또 끼어든다.


“너… 진짜 이렇게 살아도 되냐?”

“왜, 잘 살고 있잖아. 그래서 더 수상하다는 거야?”

“아니, 그냥… 좀 지루하다는 거지.”

“지루한 게 죄는 아니잖아.”

“근데 너는 원래 죄를 안 지어도 죄책감을 잘 느끼는 타입이잖아.”

“… 그건 인정.”


소란이라는 넓고 짧은 터널을 지나오고 나서야, 나는 생각보다 ‘심심한 하루’를 잘 견디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지루하다’는 말은 사실의 묘사가 아니라 자의식의 평가에 가깝다.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기준은 늘 양끝으로 달려간다. 누군가의 하이라이트 영상 옆에 내 하루를 갖다 대면 당연히 회색이 되고, 같은 하루를 ‘단단하다’고 부르면 그 회색은 안정감으로 이름이 바뀐다.


결국 똑같은 장면인데, 내가 어떤 자막을 붙이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 다큐가 되기도 하고, 영화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편집본을 보면서, 편집자처럼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그래… 또다시 수정모드. 다음 버전은, 조금 덜 흔들리는 나로. “


결심이란, 마음속에선 취임하지만 현실에선 늘 공석인 자리다. 그런데도 사람은 매번 결심을 한다. 그럴 때마다 조금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까지 든다. 결심은 늘 하는 순간만큼은 꽤 그럴듯하다. “이번엔 진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은 문장을, 근거도 없이 아주 성실하게 믿게 만든다.


나는 혼자 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땅이 받쳐주고 있어서 겨우 서 있다. 숨도 내가 알아서 쉬는 줄 알았는데, 실은 공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늘이 있고, 나무가 있고, 미생물과 먼지와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 수만 가지 방식으로 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도, 사람은 자꾸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런 착각을 바탕으로 또 결심한다. 마음먹으면, 그 방향대로 삶이 움직여줄 것처럼.


세상은 그런 결심에 별 관심이 없다. 굳이 나를 방해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은 그냥 세상 일 하느라 바쁘다. 바람은 불고, 계절은 바뀌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사정으로 움직인다. 나는 그 한가운데서 혼자 결심했을 뿐이고, 그래서 그 결심이 자꾸 예상 밖의 변수들과 부딪힌다.


결국 결심은 혼자 하지만, 삶은 절대로 혼자 굴러가지 않는다. 그 사실을 늘 조금 늦게 배운다. 결심할 때는 내가 주체인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면 나는 늘 변수들 사이에 끼어 있는 쪽이다. 그러니까 결심은 대체로 용감하다기보다 약간 순진하고, 순진한데 또 이상하게 진지하다. 그래서 매번 조금 웃기다. 알면서도 또 한다는 점에서.

결심하는 순간, 관계를 도구처럼 쥐고 있던 손도 함께 풀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로 묵직한 게 ‘쿵’ 하고 굴러 들어왔다. 그러니까 앞의 맥 빠진 결심 이야기는 결국 여기로 오기 위한 예고편이었다. 연애…. 본게임 시작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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