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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림 May 23. 2020

엉켜버린 관계의 치유 ‘오두막’

복잡한 문장 너머의 따뜻한 무언가

용서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인류는 지금까지 어떤 일이든 간에 ‘용서하라’라는 말을 꾸준히 반복해왔다. 그것이 인간들이 갈구하는 성자 이미지의 자애로움을 따라 하려는 본능인지, 용서라는 행위를 통해 편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이타주의에서 파생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용서란 선한 일이라 구분하고 이 답은 '인간은 왜 선해야 하는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무거운 것들을 애써 가볍게 생각해 보자면, 혹자들은 남을 용서하는 일이 남을 편하게 해방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생각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요약하자면 본인을 위한 행위라고 칭하고 있다. 사람들은, 교과서는, 성서는, 대강 위와 비슷한 이유를 대며 모두 다 똑같은 소리를 한다. ‘용서하라고.’
‘오두막’에서는 차마 우리가 저 말을 건네기 힘든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 매켄지 앨런 필립스는 그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을 시체도 찾지 못한 채 급작스레 떠나보내게 된다. 그는 거대한 슬픔에 괴로이 허덕이고, 그에게 건네진 것은 하나의 초대장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각오하고 떠난 그곳에서 그는 의외의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분노, 상처, 눈물, 벅찬 것들, 그리고 그것들을 다 덮어버리는 따뜻하고 응어리진 무언가. 저자는 무엇 하나도 독백으로 보충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매켄지가 ‘그분’ 앞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면, ‘그분’은 모든 것에 대답해주시지만 진솔하게 말하건대 필자는 하나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에 한 문장 한 문장 붙잡고 늘어져도 남는 것은 “사과는 빠르다”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모호함이다. 그런데도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모든 것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확실히 이 책은 기묘하다. 어떻게 보면 질서 없이 흐트러져 있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이 하나로 꽉 맞물려 결국 하나의 과정을 만들어 나간다. 어째서 그의 답이 용서여야 하는지, 어째서 사랑인지, 어째서 이렇게 흘러가는 것들을 내버려 둬야만 했는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나간다. 필자는 어떤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는지 감히 판단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 모든 복잡한 것의 ‘집합체’가 사랑,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끈끈이 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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