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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쿰 Mar 01. 2021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그래도 쉬어가자

201X, 모종의 계기로 인해 수업연구에 눈을 떴다. 그 전에는 '그냥 가르치던' 교사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급변하는 세계를 살아갈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공부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들을 녹여낸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반성하고, 또 준비하고 등등의 과정을 통해 나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고 있었다.


노력은 힘들었으나 열매는 달콤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노력을 알아주었으니까. 학생들이 나의 교육철학에 따라와 주었고, 주변 선생님들이 인정해 주었다. 칭찬을 먹고 사는 나는 그 인정에 신이 나서 더 연구하고 더 노력했다. 학생 1명당 1200자씩 적어낸 시험지를 300여장을 채점하면서도,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사람은 희망과 보람을 먹고 사는 동물이고, 나는 사람 중에서 더 그런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2020. 코로나 19로 인해 원격수업이 시작되었다. 나의 수업철학과 완전 별개의 영역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하고 성찰하는 수렴의 영역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원격수업 상황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즉 발산의 영역이 중요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대면이 당연했던 수업에서 대면이 영역을 빼면 수업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큰 흐름에 적응이 느린 나, 그리고 창의력이 낮고 발산적 사고에 약한 나이다.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와 고뇌가 있었다. 코로나와의 싸움은 곧 나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단점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일년 내내 나의 그 단점이 도드라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나의 정신력을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한 번에 찾아오는 끝없는 깊이의 고난은 아니었지만, 얕은 구덩이 같은 고난이 수시로 찾아왔고, 계속해서 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기어올라오던 과정을 반복하며 안 그래도 단단치 못한 내 멘탈을 쿠크다스보다 더 바사삭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만 바라보는 우리반 아이들이 예뻐서, 잘 따라주는 우리 학년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끝까지 포기는 안 했지만, 2020년의 수업을 되돌아보면 명백하게 실패, 라는 두 글자만이 떠오른다.




2021년은 휴직계를 냈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나이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고, 아이는 여전히 생기지 않고 있다. 아이 없는 삶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씩 돌아보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포기는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했을 때 해야 후회가 없는 것이라는 진리에 가까운 명제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 휴직. 주변 사람들이 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쌍둥이를 낳아 오라며 격려인지 저주인지 헷갈리는 말로 떠나는 나에게 박수를 쳐주는 분도 여럿이었다.


여러 글들을 찾아보면, 출근을 계속 하면서 난임시술을 받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실재로 난임휴직이라는 제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전에 난임시술을 받은 엄마들은 다 직장과 병행하며, 한번씩 병가를 써 가며 그렇게 버텨왔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떠올리자마자 바로 포기했다. 내가 남부럽지 않게 허약한 체질인 것도 고려 사항이었고, 난임시술 전 임신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본 나로서는 그 준비 과정이 얼마나 멘탈이 무너지는 과정인지 알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 남아 있는 내가 수업에 또 진심일 것을 너무 쉽게 예측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한, 나는 절대로 수업을 대충 할 수는 없다. 그 속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것이 뻔히 보였으니, 사실 휴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느낌이다.


학교에 휴직 의사를 밝히고, 정말 순조롭게 휴직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휴직 1일차. 친한 선생님들이 모두 수업준비 개학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 상황에서 나 홀로 자유롭다. 출근 때는 7시 반에 겨우 일어나서 아침도 못 먹고 씻고 바로 뛰쳐나가기 일쑤였는데, 웃기는 게 쉬니까 눈이 6시에 떠진다. 향긋한 모닝커피, 마카롱 한 조각, 내 무릎 위의 고양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심란하다. 어제 밤 꿈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2020년의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나왔다. 꿈 속에서도 나는 '이 수업 어떻게 수습하지?'를 고민하다가 기가 막히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걸 위해 룰루랄라 준비를 하다가 꿈에서 깼다. 꿈 속에서도 나는 '이렇게 하면 애들이 정말 좋아하겠지?'를 생각하며 설레고 있었다.


그 설렘은 수업연구를 시작한 이래 매 학기 시작 전에 반드시 느꼈던 그 감정과 다른 모양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리도 설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 설렌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그 순수한 감정. 올해의 다른 점은 그 설렘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뒤이어 찾아오는 허탈함을 알아챈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교사는 나의 천직이라는 것을.


2020년, 나와 맞지 않는 수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그토록 힘겨워하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끝없이 생각하고 또 되뇌었지만 결국 내가 있을 자리는 교실이라는 것을.




이미 결정된 휴직을 돌릴 수 없다. 그리고 아이를 가진다는 명제 역시 중요하므로, 내 결정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 1년, 나는 최선을 다해 몸을 만들어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다.


다만, 꿈 속에서 그 설레임을 오래 기억하고자 이 글을 적는다. 언젠가 돌아갈 내 자리, 나의 열정을 먹고 자랄 나의 아이들이 있는 곳. 다시 그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까지 어제밤 꿈속에서의 설레임을 잘 간직하여 내 학생들의 성장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복직하면 또 힘들어서 하기싫다를 입에 달고 살겠지만, 그럴 때 때때로 이 설레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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