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딸공] 평화롭고 이상한 속에서 산다.
아침, 아니 새벽 6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어둠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확인하다가 슬쩍 짜증이 솟구친다. 윗집이었다. 매일 같은 시각 진동 모드로 알람을 맞추고 마룻바닥에 휴대전화를 놓고 잠드는 모양이다.
윗집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2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진동에 현실로 끌려 내려온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진짜 잠귀는 어두운 사람들인가보다. 그런데 참 일찍 일어나네. 6시에 일어나야 하지만 6시 알람을 결코 한 번에 끄지 못하는 자들, 나의 윗집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 집은 15층 아파트의 2층이다. 그러니 내가 누운 안방 침대와 하늘 사이에 열세 명 이상의 사람들이 더 누워 있을 것이다. 나와 땅 사이에도 한두 명쯤 더 있겠지. 공간과 벽을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은 틈에 겨우 끼여 사는 사람들이라니, 어쩐지 땅 위의 개미마을 같다. 내 집의 방바닥이 타인의 천장인 것이 열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구조라는 걸 떠올리면 아찔해진다. 의식하는 것보다 더 자주 잊어버리는 덕분에 토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뜻밖에 알람을 공유한 덕에 같은 시각에 깨어나 같은 시각 화장실 불을 켜고 같은 시각 샤워기 물을 튼다. 층간소음이 가장 취약한 공간인 화장실에 위아래층 사람이 같은 시각에 앉아있다는 것은 참 민망한 일이다. 나를 깨운 건 매우 일방적인 신호였던 탓에 그들은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평소보다 이십 분씩 일찍 일어나면서도 관리사무소에 대뜸 전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벽 6시의 십오층 아파트. 공간과 벽이 층층이 반복되는 케이크 안에서 누군가는 기지개를 켜고 누군가는 샤워를 한다.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교대 퇴근을 하며 하루를 닫는다. 누구의 방바닥이 누구의 천장인 채로 누구도 토하지 않은 채 멀쩡하게 하루를 열고 또 닫는다. 같은 하늘과 같은 땅을 포개어 나눈 채 무심하게 하루를 산다.
무심한 하루가 삼백육십다섯번 반복될 동안 사람들의 일값은 그대로인 채 공간의 값은 1.5배가 되었다. 의식하는 것보다 더 자주 잊어야 토하지 않을 수 있다. 이건 정말, 평화롭고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