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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Oct 11. 2020

나의 첫 혼여행

혼자서 잘 자고 갈 거죠?

2000년 여름, 대학생이 되면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쯤은 당연히 해봐야 하는 거라 믿었던 나는 포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동해안으로 떠났다. 포항-울진-삼척-동해-강릉-속초까지 연결되는 7번 국도의 첫 번째 기억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던가 칠포 월포 등의 동해 바다를 수 없이 다녔으니 아빠 차에 앉은 채 7번 국도의 일부를 분명 지났을 테지만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한 여행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이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있었다. 몇 개씩 돌아가던 과외가 여름 휴가 시즌이라 일시에 일주일 정도 비게 되었던 이유, 개강까지는 시간이 있는데 가만히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은 해외로 어디로 많이들 갔다더라는 소식에 어 나도? 싶었던 마음.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동해시까지 가는 표를 샀는데 몇 시간 걸리냐는 말이 기사님이 대답했다. 한 다섯 시간 잡으면 넉넉~합니더!      


버스는 동해까지 넉넉하게 다섯 시간을 달리며 국도변의 꽤 큰 휴게소에서 두 번을 정차했고, 기사님은 울진 터미널에서 다른 분과 교대를 했다. 포항에서 출발할 때 여덟 명이던 손님은 삼척에 도착할 즈음 서너 명으로 줄어있었고, 그 후로 동해까지 꾸준히 서너 명을 유지했다. 무슨 소리냐 하면 기사님만 교대를 한 게 아니라 중간에 손님들도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니 교대하듯 사람들이 바뀌었다는 소리, 가만히 쳐다보니 포항서 동해까지 교대 없이 온 사람은 나와 군복을 입은 남자 한 명뿐이었다. 와 이러다가 진짜 궁뎅이에 땀띠 나겠다 싶을 즈음 도착한 동해, 터미널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무릉계곡이란 곳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그 여행은 정말 이상한 여행이었다. 스무 살의 여자 사람이 혼자서 가방 하나 덜렁 메고 떠나는 여행이라면 응당 예쁜 카페나 바다를 찾아가야 정상 아닌가. 핫플을 찾아 실제보다 예쁘고 실제보다 감동적으로 사진을 찍은 뒤 실시간으로 쌓여가는 좋아요를 바라보며 히힛 웃고 떠들다 보면 하룻 밤 쯤 꼬박 샐 수도 있는 것, 나를 찾는 여행이라 쓰고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으로 찾아가서 실제와는 많이 다른 사진을 SNS에 올린 뒤 늘 소통하던 사람들의 좋아요에 흐뭇함을 채우는 것. 스무 살 여자 사람의 혼자 여행이란 보통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그 여름의 여행은 정말 이상한 여행이었다.      


우선 나는 디카가 없었다. 그 당시 쓰던 폰은 드라마폰이라고 광고하던 빨간색 폴더폰이었는데 당연히 전화나 문자 이외의 기능은 몹시 제한적이었다. 그러니 나는 사진을 찍거나 검색을 할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 간 도시였으니 당연히 핫플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필 동해시를 골랐을까?


어릴 때부터 버스 운전하는 아빠를 따라 강으로 산으로 안 가본 곳이 없었던 나였다. 때는 여름이었고, 여름 여행은 계곡 아니면 바다가 진리, 그 당시 포항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바다 말고 계곡을 한번 가보자는 단순한 결론이었다. 야후나 라이코스일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어느 포털에서 동해안 계곡을 검색했더니 알려준 곳이 무릉계곡이었고, 혼자 가서 발이나 좀 담그고 하룻밤 자고 오지 뭐, 이렇게 단순할 수가 없는 사고의 흐름이었다.      


터미널에서도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을 갔나보다. 무릉계곡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어스름이 깔리는 시각이었으니까. 낯선 도시 낯선 계곡, 그런데 길옆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은 너무 익숙해서 웃음이 나왔다.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 수십 개씩 엉켜 매달린 염주 목걸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었다는 나무 도장, 십이지신이 새겨진 열쇠고리, 효자손, 표주박, 어린이용 뱀 장난감 등의 기념품 가게와 산채비빔밥, 더덕구이, 도토리묵 무침에 동동주를 파는 식당들까지. 왜 전국의 모든 산 모든 계곡의 입구는 다 똑같은 것인가 낯설고 익숙한 장면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다.      


‘2층에 민박 있읍니다’라고 써진 식당에 가서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주문하며 물었다.

- 방 있어요? 얼마예요?
- 혼자 왔어요?
- 네.
- 어, 혼자 잘 자고 갈 거죠?
- 네 밤에 혼자 죽거나 하지는 않을게요.
-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농담은. 그런 뜻은 아니고.      



혼자냐는 말에 굳이 ‘잘’을 붙여 질문하던 주인 아주머니는 죽지는 않을 거란 말에 오히려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1박에 5만 원, 지금 생각해도 꽤 비싼 가격에 최선을 다해 흥정을 했다. 최종 낙찰가격이 4만 원이었던가? 동해까지 오는데 이미 하루를 써버린 나는 밤을 ‘잘’지내고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다.        


광복절만 지나면 물이 차다. 물놀이를 가면 으레 듣던 어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휴가철 성수기가 한풀 꺾인 무릉계곡 물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입수를 할 계획은 아니었지만 발은 담가 보려고 했는데 아침나절 계곡 중턱까지 산책을 갔다가 손으로 물만 탁탁 튕겨보고 내려왔다. 며칠 전 비가 왔다더니 차가운 물이 탁하기까지 했다. 에이, 이름만 무릉계곡이지 별 거 없네. 미련 없이 발길을 강릉으로 돌렸다.      


동해보다 강릉이란 곳은 좀 더 익숙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열풍이 채 가시기 전엔 그 시절, 정동진은 그야말로 핫플이었으니까. 하지만 고백하자면 그때도 지금도 나는 모래시계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그 시절 모래시계가 방영된 SBS는 서울 티비에만 나오는 신비의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강릉까지 기차로 한 시간. 버스를 두고 굳이 기차를 택한 것은 정동진역에 바로 내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바닷가 바로 옆에 기찻길이 있네, 흑백 필름을 말아 넣고 카메라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잠깐 발 담갔던 사진동아리의 가을 전시회 사진을 건진 것도 이 곳이었다. SNS용 허세 샷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2000년, 스무살의 허세를 가득 담은 기찻길 사진 한 장. 그러나  여행에서 내가 얻은 진짜 수확은 ‘혼자 여행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나, 그런 나를 즐기는 나.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리는 사진 한 장.      


처음 가본 도시의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 주세요!’를 외치고, 홀에 앉아 갓 볶은 짜장을 면에 비벼 후룩후룩 먹던 나. 그런 나에게 무관심한 척하려고 애써 흠흠거리며 카운터를 지키던 사장님. 방 있냐는 질문에 망설이며 ‘혼자  자고 갈 거죠?’를 묻는 주인아줌마와, ‘죽지는 않아요’라고 답하며 씨익 웃던 나. 흑백 사진 몇 장으로 남은 정동진의 바다와 기찻길. 생각보다 감흥이 없어서 오히려 당황스럽던 바닷가 초대형 모래시계.      


강릉에서 하룻밤을 더 ‘잘’ 보낸 나는 포항이 아닌 대구로 향했다. 버스는 7번 국도를 거슬러 내려와 포항을 지나 대구까지 달렸고 기사님이 두 번 교대한 여덟 시간 뒤에야 동대구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그날 7번 국도에서 내려다본 바다만큼 예쁘고 반짝이는 바다를 다시 본 일이 없다. 예정에 없이 대구 집에 가서는 한참을 자랑삼아 떠들다가 기집애가 겁도 없다며 실컷 혼났지만, 그 시절 혼자서 ‘잘’ 보낸 이틀 밤의 기억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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