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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Oct 12. 2023

질투

나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꼭 이런 과정이 필요했을까

대기업, 높은 연봉, 정기적인 수입. 나는 이런 것들을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학부를 졸업할 때 선배 언니의 권유에 따라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이해도 잘 안 되는 책을 접하는 호사를 누리며 마음껏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를 유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철학과에 들어가서 꾸기 시작한 꿈은 교수였다. 당시 좋아했던 프랑스 철학자 루소의 글을 읽고 그럴싸한 논문을 하나 써내면, 그 다음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고, 박사를 따서 돌아오고, 어영부영 교수 자리 하나쯤은 나에게 허락될 거라 생각했다. 상상 속에선 모든 게 그렇게 쉬웠다.


내가 허황된 꿈을 꾸는 동안 나의 고등학교 친구 A는 중견 게임업체에 취업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회사에서 재무 쪽 일을 담당하며 자신의 무능을 체감했다. 그녀의 상사는 부하 직원들에게 참을성이 많지 않아 그녀는 매일 힘겨워했다. 언젠가 그녀가 자취하는 동네에 찾아가 그녀를 만난 일이 생각난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말투에서는 만성피로가 엿보였다.


그녀와 달리, 나는 아무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노트북에 10년을 주기로 한 90세까지의 계획을 엑셀로 작성해 놓을 정도였다. 60~70세에는 장미 넝쿨로 꾸며진 정원을 가꾸고 90세에는 가진 것과 아는 것을 남들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현자 같은 모습의 나를 그려 놓았다. 친구에게 나의 계획표를 공유하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내 자아를 실현하며 잘 지내고 있는데, 친구는 회사를 잘못 만나 계속 자학만 하며 살아가다니, 참 안됐다.’


내가 몰랐던 것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내가 병을 겪게 되리라는 사실이었다. 조울증은 내가 이전까지 알고 꿈꾸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가령, 내가 좀 특이한 구석이 있어도 정상인의 범주에 속한다는 믿음 같은 것마저도 말이다.


내가 병을 겪는 사이, 친구의 인생은 반전을 겪었다.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게임업체로 이직을 했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팀에 배정되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없이 위축되어 있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유능감을 한껏 느끼는 친구의 변화가 여실히 느껴졌다.


나도 비슷한 시기에 철학을 그만두고 이전부터 하고 싶던 번역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졸업했지만, 병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졸업 후 얻은 괜찮은 직장을 조울증의 재발로 인해 그만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병이 다시 심해지면서 나는 나의 ‘비정상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동안 외면했던 절대자에게 기도하고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아무도 나를 통제하지 못하여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를 타고 입원을 했었기에 퇴원 후에는 도로를 지나는 앰뷸런스, 경찰차,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마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이렇게 내 삶이 추락해 갈 때, 나는 친구의 정상 생활, 아니 정상을 훨씬 뛰어넘는 소위 ‘잘풀리는 인생’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친구를 만나면 그녀의 직장 생활을 묻는 것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화목하기만 했던 친구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녀의 친구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다 괴로웠다. 내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상황들을 친구에게 털어놓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정상적인 삶을 살고있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는 불필요하며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친구는 좋은 것만 나누는 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부채감이 쌓였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실수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진 신앙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내 신앙이라고 생각했고 서서히 친구를 압박했다. 친구는 성당에 다니다가 지금은 다니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친구가 하고 있는 모든 일, 모든 생각은 주님을 떠나 있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며, 신앙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친구를 채근했다. 친구는 나를 달래려다가 시종일관 같은 말만 하는 나에게 질려 나중에는 결국 화를 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친구를 그토록 몰아세우고 신앙을 강요하던 나의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것만이 길이라고 생각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는 것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하면 어떻게든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고, 친구도 마음을 조금만 돌이키면 그렇게 될 텐데 일부러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친구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나는 그러다가 결국 먼저 친구에게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하고 있는 강요가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음에도 그것을 내 스스로는 그칠 수가 없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나는 친구를 떠나야 했다.


친구에게 내 신앙을 강요하게 된 최초의 동기는 친구와 나의 격차였다. 친구는 부자고 나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친구는 가정이 화목한데 우리 집은 불화가 있으며, 친구는 지위가 높은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신앙을 갖는 것이다. 나는 암암리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와서 그녀의 진정한 친구라기보다 늘 그녀의 배신자였음을 느끼는 까닭은, 친구가 부자이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친구의 삶에 변함없는 관심을 갖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를 대기업에 다니는 1인 정도로만 늘 바라보았다. 친구의 깊은 내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늘 그 외면을 나와 비교하며 기죽어 있었다. 친구에게 나의 질투를 털어놓은 적도 있지만, 털어놓는 것으로는 질투가 해소되지 않았다.


모두 지난 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때 나는 질투를 ‘그칠 것을’ 선택했어야 했다. 나는 앞으로 질투를 하지 않겠다, 고 나 자신에게 선언하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대신 좀 더 쉽고 무식한 방법, 즉 나에게만 좋은 내 신앙을 내 친구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길을 택했다. 친구와 멀어진 것은 당연하다. 나는 여전히 이런 내가 단숨에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앞으로도 다른 관계들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상대의 조건을 나와 비교하여 기죽거나 질투하지 않을 것이고, 다음으로 상대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신앙을 들이밀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실수만 되풀이하지 않아도 나의 다음번 우정의 이야기는 지난번의 이야기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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