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21. 2023

데드 맨 워킹

도대체 90살이 넘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K어르신은 이 동네 최고령자이시다. 92세. K어르신의 부인은 93세. 2년 전 요양원에 입소하셨는데 자녀들이 당황할 정도로 아직도 생존해 계시다. 몇 주 전 K어르신께서 출근하자마자 급하게 진료소를 찾아오셨다.

평소 그 흔한 고혈압도 없으실 정도로 건강하신 분이시니 가볍게 인사하며 맞아드렸다.

"나는 말이에요, 설사도 아닌데 자꾸만 무른 변이 계속 나와요. 숨도 차고 어지럽기도 하고... 팬티를 몇 개나 버렸어. 그냥 줄줄 나와요..... 이거 큰일 났는데..."

"언제부터 그러세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셨어요?"

"읍내 종합 병원에 갔었는데 입원하라고 해서 한 사나흘 입원했는데 링거만 계속 달아 놓고 이런저런 검사만 계속하더니 별 신통찮게 말하고... 도대체 내가 갑자기 왜 이럴까?"

"일단 변 조절되도록 약을 좀 드려 볼까요? 어지럽고 숨찬 것은 대학병원 가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우선 그거라도 좀 해줘요. 큰일 났네....."


 '도대체 내가 왜 이럴까'에 대해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감히 '나이 탓'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어르신의 '큰일 났네'라는 말과 그 안색은 뭔가 무서운 것을 본 사람의  얼굴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92세라는 나이의 무게는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아 황망했다.

'Dead Man Walking'

문득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내가 지어드린 약을 받아 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며 그 걸음걸이와 속도가 다른 날과 달리 무겁고 느리고 애처로웠다. 사형 집행을 직감한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이동할 때의 심정이, 지금 이 K 어르신과 같을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노환이 든 어르신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바깥출입의 횟수가 줄고, 방 안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지다가 점점 누워 계시는 시간이 늘고 결국은 딱히 어디가 아프다는 표현도 안 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장기가 서서히 부전이 오고 마지막엔 팔다리로 혈액이 순환되지 않으면서 싸늘하게 식어가며 항문이 열려 무른 변을 모두 내놓고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주무시듯, 또는 힘겨운 거친 호흡을 내며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그러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신다.


 지금 내가 일하며 만나는 고령자들은 다르다. 몸의 시간을 생각의 시간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자신의 나이를 잊고 산다. 노환이 드는 순서가 옛날과 다르다. '마누라가 내 나이 70살에 죽었어. 내가 이렇게 노래 살 줄 알았으면 재혼을 할 걸 그랬어!' 어떤 95세 어르신의 말씀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분은 걸어 다니면서 노환을 앓았다. 변이 새어 나오니 며느리가 감당할 수 없어서 요양원으로 보내졌다. 그 해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하러 버스를 탁  요양원에서 나와 살던 집을 한 바퀴 둘러보시고 아들 며느리와 점심이라도 같이 하려고 하셨다가 그냥 되돌아가셨다. 그리고는 얼마 되지 않아 요양원에서 '그냥 갑자기 혼자'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온 동네가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아들 며느리가 어르신을 강제로 보냈다는 말도 나왔지만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정신이 먼저 노환이 들어 인지장애가 오거나 다른 이상 없이 대소변 감각을 잃거나 모든 신체 상태가 정상인데 걸음만 못 걸어 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는 그 상태로 장수하는 시대이다. 두려울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생신을 맞으신 시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내 년이 구순이시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화가 나 있으시다. '내가 왜 이러니??!!' 어머니는 나이를 드는 줄도 모르게 세월이 가는데 신 채 기능을 점점 전과 같지 않으니 만나는 의사들이 모두 '환자를 잘 보지 못한다.' 어머니도 '데드 맨 워킹'인 것일까. 걸어 다니는 노환을 앓으시는 고령자들이 모두 그런 마음, 그런 두려움을 지닌 채 살아 각  있는 것인지 그 나이가 되어 보아야 정확히 알리라. 알 수 없는 생의 마지막에 너무 오래 살게 되는 이들을 위해 건강 증진 프로그램 말고, 과연 어떻게 슬기롭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이고 현실 적용 가능한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딸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