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을 견딜 수 있었던 힘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히 나를 사로잡곤 하여 최근 노래에 대한 관심 지수가 부쩍 올라갔고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다. 할 것은 해 가면서 하는 편인데 주말에 일주일 단위로 마련하던 반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장을 볼 시간도 없어서 일단 냉장고를 털어 보기로 작정하고 거의 한 시간 이상을 냉장에 붙어 시간을 보냈다. 김치 냉장고 안에 깊숙이 들어 있는 배추김치를 발굴했다. 보리밥을 갈아 넣고 담근 모양을 보니 이른 봄(아마도 정월 전?) 마을 어르신이 주신 저장 배추로 담근 김치인 듯하다. 김치 위에 덮인 골마지를 살짝 걷어내니 그 안은 모양이 나쁘지 않다. 씻어서 우려내어 국멸치와 된장을 넣고 지짐을 하는 방법도 있으나 어쩐지 신김치로 끓인 김치찌개가 불쑥 먹고 싶었다.
냉동실에 모셔 두었던 돼지고기를 해동시켜 새우젓을 넣고 끓이다가 김치를 넣었다. 김치 국물로 반 컵 정도 넣었다. 순식간에 주방 가득 신김치 끓는 냄새가 가득하다. 그리고 아득히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나비처럼 내게 날아와 나무 수저를 쥔 내 손 등 위에 앉는다. 스무 살. 대학 1학년. 나는 역사나 사회학에 관심이 많았고 인문학을 전공하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즈음 우리 집은, 매일 빚 독촉 전화가 왔고 옆에 앉은 어머니의 눈짓에 따라 그럴듯하게 '지금 집에 안 계시다'는 거짓말을 둘러대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대놓고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하여 저 시집갈 돈이나 벌어라는 아버지의 말씀도, 등록금 싼 국립대학이나 교육 대학, 전문대학을 종용하는 어머니를 거역할 수 없어서 졸업하면 취업이 잘되는 간호대학을 들어간 그 스무 살. 나는 매일 우울했고 학과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이한열 박종철 열사가 희생되었던 그 시절,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진 나는 최루탄 냄새가 밴 단벌 옷을 밖에 널어놓아 학교에 갈 수 없던 날도 있었다. 나는 그때 매일 내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거의 20시간 이상씩 했었다.......
강화에서 함께 간호대학을 간 친구가 있었다. 몇 명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L과 특히 친했다. 어려서부터 같은 교회에 다녔던 덕분에 L은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얌전하고 조용하고 말이 없었지만 단단한 친구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두었고 성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L은 영문과에 다니는 언니의 학교 가까이에서 자취를 했다. 나도 물론 자취를 했지만 빌라의 방 만 한 칸 얻었고 주인집 주방을 함께 써야 하니 자취랄 수도 없는 나와는 달리 L은 조그만 부엌이 있는 독립된 월세집이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L을 따라 함께 버스를 타고 그녀의 자취집으로 갔다. L은 어린 나이에도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글 정도로 야무진 친구였다. L을 따라가면 그녀가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김치찌개를 끓여서 함께 밥을 먹었다. 다른 반찬은 없었고 식용유에 볶다가 그냥 물을 붓고 끓인 그 신 김치찌개 하나를 놓고 금방 한 밥을 먹는 나는 슬펐지만 동시에 행복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같았던 내게 L은 깃대처럼 나를 붙들어 주고 있었다. 딱히 그런 의지가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의 존재가 나를 현실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었다. 아니, 내가 그녀에게 붙어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시험 기간이 되면 열심히 공부하는 그녀 옆에서 나도 시험공부를 했고 우리는 또 식용유에 물만 붓고 부글부글 끓인 신김치찌개와 밥을 먹었다. 대학 시절 내내 그녀의 신김치찌개와 갓 지은 밥을 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로 떠난 우리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작년 7월 L의 친정어머니 부고 덕분에 장례식장에서 재회했다. 나보다 더 친한 친구들이 있는 그녀였지만 대학 때와 다르지 않게 나를 살펴주는 그녀의 변함없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저 큰 파란 없이 안정된 삶을 살아온 그녀에 비해 나는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그녀는 부모님 때문에 강화에 자주 오면서도 연락을 하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내 삶을 꾸리느라 그녀에게 먼저 연락을 하진 못했다. 그래도 전화를 하거나 그렇게 몇 년에 한 번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사람 같은 나의 솔메이트인 친구. 그 외롭고 서럽고 궁핍했고 분노에 차 있던 나의 스무 살. 그래, 수진아. 네가 많이 고단 했겠다. 이젠 그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부디 안심하렴. 너는 어렸지만 충만한 어른이 될 예정이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