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냐고 묻지 말아야 하는 이유
몇 주 만에 딸이 집에 다니러 왔다. 남편과 셋이서 맥주도 한 잔 했고 저녁도 맛있게 먹었다. 딸이 조심스레 결혼 계획을 내놓았다. 특별하지 않게 최대한 형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하는 딸의 말에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치는 가운데 갑자기 경고등도 없이 눈물이 솟구쳤다. 낳고 기르며 공들이던 나의 긴 시간들과 자신의 꿈을 위해 쉬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기뻤던가. 더불어 딸의 결혼식에 대한 막연한 로망도 품었었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훌쩍이는데 그 순간 남편이 내게 화를 내었다. '좋은 일을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왜 우느냐' 따지는 남편의 차가운 핀잔이, 머리에 냅다 꿀밤이라도 맞은 듯 매웠다. 화를 내는 남편이 어이없어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딸이 놀라고 당황하고 송구하게 여길까 봐 그냥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렇잖아도 눈치 빠른 딸은 결혼식 당일 엄마가 무조건 울 것 같다며 걱정을 하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남편이 괘씸했다......
친한 후배가 다른 지방에 있는 친정에 갔다가 폭설로 발이 묶여 열흘 만에 집에 돌아왔다. 열흘 만에 가까스로 미끄러운 길을 헤치고 온 아내에게 인사는커녕 일상적인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울먹였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말도 않고 웃지도 않고 반응을 안 해요. 울화가 치밀어서 다시 친정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요. 괜히 왔나 싶어요.....' 후배의 말에 깃든 서운함과 분노를 이해할 것도 같다. 나와도 친한 후배의 남편은 내가 겪어도 참 무뚝뚝한 남자다. 최근 새로 시작한 사업으로 고민도 많고 부담도 크겠지만 남편이 자신의 껍데기에 들어가 있는 사이 아내는 홀로 벽을 보며 울고 있다.... 남의 남편 심정은 이렇게도 찰떡같이 이해가 되는데 어찌하여 내 남편의 마음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울까.
같은 성당에 다니는 자매가 불쑥 전화를 했다. 야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여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를 하여 서울 친구들 만나 술 마시기로 했는데 좀 태워다 달라고 했다고 했단다. 물론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태우러 오라고 했단다. 그냥 눈물이 왈칵 났다고 했다. '그게 뭐가 어렵고 싫어서 울기까지 하느냐' 면서 '됐으니까 그만하라, 택시 타고 가겠다'라고 하더란다. 내내 울었다고 했다.
30년 전 나의 혼인미사를 주례해주신 사제께서 했던 그날의 강론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공자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보다 더 적극적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내가 해 주어야 한다'라고 하신 인생의 황금률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젊은 내 가슴을 울렸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도 부부 사이의 의견 대립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좁아지려고 하는 순간이면 애써 떠올려 그가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내가 먼저 그에게 해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람을 틔워야 할 때면 떠올리곤 하는 이 적극적인 사랑의 말씀을 나는 내내 사랑하였다.
아내가 울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왜 우냐'라고 한다. 하지만 우는 이유를 아내가 설명해도 남편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유를 말하면, '그게 울 일이야?'라고 한다. 그러니 왜 우느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사고의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란 다른 성으로 다시 태어나 보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아내가 운다면 그냥 먼저 위로부터 하라고 말하고 싶다. 말없이 안아주라고 하고 싶다. '네가 왜 우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네 감정 상태를 존중해 줄게'라는 마음으로. 어렵지만 이해하고 나서 뭘 하려면 아내의 마음은 이미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간격을 좁히려면 남자가 생각하는 방법으로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