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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Dec 20. 2024

딸의 남자친구 가족과 상견례

양가의 김치를 주고받다.

 [1] 딸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다. 


 이 아이를 낳을 때 제왕절개술이 결정되고 담당 의사가 '좋은 날 받아 오라'라고 했지만 남편과 나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 스케줄에 맞춰서 정해 주세요'라고 했었다. 남편과 나의 결혼식 날짜도 달력을 보고 이런저런 사항을 고려하여 날씨가 가장 좋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로 우리 스스로 정했었다. 내 인생의 최대 중요한 날을 누군가 남이 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딸의 결혼식 날짜는 예식장에서 잡아 주었다. 선택의 사항도 아니었다. 원하는 예식장 예약 사이트가 열리는 날 오픈런으로 상담 날을 예약을 한 후 예식장의 예약 가능한 날 중 최대한 적정한 날을 골라야 했는데, 막상 원하는 날과 시간엔 예약을 잡을 수 없었다. 이미 예약이 가득 찬 때문에 나의 모임 친구 중 딸을 결혼시키는 사람과 같은 날 오전, 오후로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다. 대단히 황망했다. 내가 결혼 당사자가 아니니 뭐라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미 성당에서 결혼하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 때문에 한차례 눈물 바람이 지나간 탓에 서운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결혼식 날짜를 예식장 컨디션에 맞추다니..... 아무튼 것 참.... 세상 희한하게 돌아간다....'


[2] 결혼 날짜가 일 년 후로 정해졌으니 양가 상견례는 지금쯤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먼저 물었다. 딸과 딸의 남자친구는 내년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전통적으로는 신부 측 집에서 혼인 날짜를 잡아 양가가 만나 인사를 한 후 결혼식 날짜를 의논하는 것이 순서이긴 했다. 아이들은 바쁘기도 하고 절차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리 넘어가려고 하는 듯했다. 내 속마음은, 아들을 저리 잘 길러낸 그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기에 빨리 만나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신랑 측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를 보면 그 자식의 됨됨이를 더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내 친정아버지는 말버릇처럼, '그저 다 필요 없고 싸가지 있는 놈만 데려오면 된다'라고 하셨었다. 그땐 우리 자매들 모두 웃었지만 살아보니 그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였다. 사람의 됨됨이가 너무 부족하면 차라리 결혼을 아니함만 못할 정도로 인성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결혼 당사자들 역시 처음이니 무조건 점수를 따려고 가식을 부리더라도 그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면 대충의 진심은 알 수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양가 상견례 날짜가 12월 첫 주로 정해졌다. 


[3]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니 상견례 관련하여 포스팅해 놓은 블로그들을 정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결혼 전 상견례는 썩 유쾌하진 않았던 기억이다. 머나먼 경북에서 올라온 남편의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이 통나무로 지어진 당시만 해도 고급이던 갈빗집에서 함께 만났었고, 엄마는 나를 '아들보다 더 의지하는 딸'이라고 자랑을 하셨고, 남편의 어머니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라고 서로 경쟁하셨다. 남편의 어머니는 '고마 막내이 하나는 빼낏다'라는 말씀으로 내 마음을 편편찮게 하셨고 '친정 엄마 자리를 보니 보통 아니겠다'라는 칭찬 아닌 말씀으로 나를 당황케 하셨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쨌든 내게 자식의 상견례가 닥친 것은 처음이라 일단 무슨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 궁금해 검색을 해보았다. 주로 예비 신부들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들이 있었고 의상, 장소, 대화 내용, 선물 등에 대한 비교적 비슷비슷한 내용들을 자상하게 써놓고 있었다. 

 

 일단 의상은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정장이나 새미 정장을 권하고 있었다. 내가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이 새미정장과 여성스러운 의상이니 그저 가지고 있는 옷 중 단정한 것을 고르면 되겠다.  장소는 조용한 룸이 있는 한정식, 중식, 일식 등이 선호되는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굳이 한정식 그런 어색한 분위기보다 경치 좋고 예쁜 이탈리안 카페 레스토랑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코스로 나오는 그런 식당들은 직원들이 코스에 맞춰 서빙을 하느라 자꾸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탓에 대화의 흐름을 끊고 방해하곤 하는 것이 마땅찮았다. 하지만 딸이 추천한 곳은 양가의 집에서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는 퓨전 한정식당이었다. 차라리 신랑의 가족이 사는 동네에 있는 조용한 식당이 낫겠다고 내가 의견을 냈다. 한쪽만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았고 딸이 추천하는 그 식당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곳인 데다가 음식 값이 너무 비쌌다. '경*궁'이나 '삿*로'가 상견례 장소로 유명한 듯하여 신랑의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 '삿*로'로 정했다. 신랑의 아버님이 사업 상 중요한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자주 가는 잘 아는 곳이라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선물도 고민이었다. 이런저런 추천템이 많았지만 나는 그 가족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는 품목이 어떨까 하여 내가 사는 강화의 특산물들을 생각했다. 

"순무김치를 한 통 담아갈까?"

나의 말에 딸과 남편이 난색 했다. 초면에 김치는 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집 음식에 그 가정의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나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서 '*관장'에서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가 사랑하는 후배 부부가 만드는, 6년 근 인삼을 진하게 달여 농축한 HACCP이 인증한 강화 특산 홍삼진액과 '강화 소창 기념관'에서 만든, 순무와 인삼이 예쁘게 자수 놓인 소창 손수건과 원목 수저 세트, 그리고 꽃다발을 준비하기로 했다. 상견례 전날 김장을 마친 저녁에, '오빠랑 선물 얘기 하다가 엄마가 순무김치 담아가신다고 하셔서 질색을 했더니 오빠가, 아버지 순무김치 엄청 좋아하시는데, 하면서 아쉬워하더라'는 말에 나는 서둘러 김장 전 미리 담가 두었던 순무김치를 통에 담아서 준비했다. 긴장과 기대,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새 학기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일까 하던 어릴 적의 개학 전날 같은 느낌이었다. 


[3] 내가 상상하던 그림이 아닌 만남


 '어머나, 이건 아니잖아.....' 그랬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늦지 않게 가려고 일찍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30분 일찍 도착한 장소의 지하 주차장에 우리가 탄 차 바로 뒤에 들어온 차에서 신랑의 가족들이 우리와 동시에 내렸다. 우리는 주차를 한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버렸다. 내가 상상하던 그림은 고급진 식당에 우아하게 앉아 있다가 곧이어 들어오는 신랑의 가족들을 일어서며 맞아 서로 목례를 하고 악수를 하면 아이들이 제 부모들을 소개하는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는데, 신랑의 아버지들은 주차를 한 지하 주차장 통로에서 악수를 나누었고 어머니들끼리는 환하게 웃으며 서로 두 손을 맞잡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함께 팔짱을 끼고 두 가족 여덟 명이 우르르 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것으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그저 웃음이 날 뿐이었다. 한편으로 어색함을 극복할 다른 방법을 궁리할 일이 없어져서 오히려 더 좋기는 하였다. 예약된 룸으로 들어가 딸 둘인 우리 가족과 아들 둘인 신랑의 가족들이 마주 보고 나란히 앉았다. 아버지들이 먼저 상대의 어머니들에게 꽃다발을 주고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자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블로거가 미리 알려준 피해야 할 화제들, 일명 '정치, 종교, 학벌, 경제 사정'등의 이야기는 할 사이도 없었다. 아버지 둘은 내향인이었고 나와 안사돈은 외향인이었으니 아버지들의 덕담 20 : 어머니들의 대화 80으로 이야기 꽃이 피었다. 나는 예비 사위에 대해, 몸에 밴 매너와 예의 바르게 경청하며 적절한 리액션을 하는 첫인상에서,  '참 잘 컸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 부모님들을 보니 그 첫인상이 맞는구나 싶어 기쁘다고 했고, 아들만 둘을 키우다가 이제야 비로소 자신과 공감할 여자친구가 생긴 기분이라면서 내 두 딸들을 보며 연신 '예쁘다'는 말을 하는 사돈과 나는 동년배이기도 했다. 그렇게 2시간을,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게, 식사도 잊고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금세 의기 투합하여 행복해진 우리들은 선물 교환을 시작했다.


[4] 선물로 양가의 김치를 주고받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는 순무김치를, 사돈은 김장 배추김치를 담아왔다. 그리고 그 집 음식을 먹어 보면 그 집 인심을 알 수 있다는 똑같은 생각도 주고받았다. 마침 김장 직후기도 했지만 그 집의 대표적인 음식은 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같았다. 웃음이 터졌다. 유쾌한 어머니들의 김치 주고받기 다음으로 다른 선물들도 교환했다. 나름 정성껏 준비한 나의 선물이 무색하도록 우리 둘째 딸 것까지 개인별 선물을 모두 준비한 사돈의 섬세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돈은 그랬다. '엄마에게서 좋은 본을 받아 딸도 말할 것 없이 너무 예쁘다'라고. 하지만 나는 내게 없는 부분을 갖고 있는 시어머니를 만난 딸이 복이 있다고 느꼈다. 분명 그녀는 내게 부족한 면,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를 갖고 있었다. 감사함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마치고 서로 좋은 친구가 되자는 마무리 인사 그리고 아버지들의 마무리 덕담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두 가족이 앞으로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상견례를 기쁘게 마쳤다. 


 물론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들이 필요한 일이다. 낯선 사람들이 가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너그럽고 온유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방법으로 서로에게 다가가야 하겠다. 엄마 같은 시어머니 없고 딸 같은 며느리 없다고 하는 말은 맞다. 나 역시 며느리의 입장이니 아니라고 할 수 없겠다. 하지만 그런 시대, 며느리를 가르쳐 가풍을 익히게 하고 하루속히 가족의 일원이 되게 만든다는 개념은 이제 우리에게서 끝내야 한다. 어른이 될 때까지 맡아서 키우며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선물로 받았던 자식이 이제 부모의 슬하를 떠나 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순간이다. 독립된 새로운 가정의 탄생을 응원하며 돕는다는 마음 하나만 지니면 되겠다. 그 삶에 개입하여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참견은 금지다. 그 참견, 그 깊은 개입으로 삶을 침해당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은 지나갔다. 험한 세상을 향해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 나가려고 부모라는 항구를 떠나 출발하려는 두 청춘에게 끊임없는 기도와 지원을 할 준비가 나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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