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가을 깊어진 시골길을 달리던 중 눈에 들어온 감나무를 보며 내가 말했었다. 햇살은 환했고 하늘은 바다처럼 푸르고도 시린 날이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그 여름의 폭염 끝자락이 아직 걷히지 않아 낮엔 뜨겁고 더웠다. 모두들 김장 배추며 무가 잘 되지 않았다고 걱정하고 있었고, 대파의 합리적 가격이 도대체 얼마인지 알 길 없었다. 폭염에 시달리다가 겨우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긴 그 주일의 정오였다.
"올핸 비도 너무 많이 왔고 여름도 너무 뜨거웠지. 모든 열매들이며 결실이 유난히 작고 초라해. 땅에서 나는 모든 곡식이며 열매들은 비가 올 땐 흠뻑 와야 하고 비가 그만 와야 할 땐 또 멈춰줘야 하지. 추울 땐 땡땡하게 춥다가도 얼음 녹듯 추위가 풀리고 햇빛이 듬뿍 골고루 내리쬐어 주어야 꽃이 필 때 피고 꽃이 자연스럽게 똑 떨어지면서 거기서 열매가 맺히고 나면 비도 바람도 햇살도 열매들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서서히 그리고 때맞춰 내주어야 해. 그런데 올해는 꽃이 필 때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열매가 맺히기도 전부터 폭염이 시작되었지. 그리고 너무나 길고 무섭게 매일 뜨거웠어. 저 감나무들 좀 봐. 나는 올해의 열매들이 유난히 장하고 대견스럽게 느껴져. 가까스로 그 비를 견디고 꽃을 피우고 벌도 나비도 제대로 날아다니지 못하게 비가 쉬지 않고 왔어도 가까스로 꽃을 피워 어쨌든 저렇게 열매를 맺어 작고 초라해도 감 모양을 갖추고 저렇게 익었네... 저 나무 주인은 감 딸 시기가 지나도록 그냥 나무에 매달아 놓고 따지도 않는다. 너무 작아서 상품 가치도 없는데 이 바쁜 시기에 품이 안 나서 그렇겠지.... 홍시가 되면 따서 먹고 하겠지...색깔 보니 잘 익어서 맛은 있겠네."
딸이 말없이 길 옆에 나란히 늘어선 감나무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저 감들. 우리나라 청년들 같아..... 이렇게 모든 비, 모든 바람, 모든 폭염에도 어떻게든 저마다 나름의 열매를 맺고 익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유난히 작은, 그러나 그 빛깔 만은 진한 홍시들. 아마도 맛은 의젓하고 당당한 그 감칠 단맛을 낼 것이다. 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내 손을 맞잡고 힘을 주는 딸의 손은 가늘고 부드럽지만 내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충분했다. 요만한 세상을 줄 수밖에 없어서 아프게 미안하지만 분명 또 어떤 지혜로써 그 비와, 그 태풍과, 그 폭염을 견디고 열매를 맺고야 말 새 세대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