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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초란 Feb 15. 2022

오감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잊어버리지 않았나요?

#잡문 #무엇이 여러 가지를 잊게 만들었나.

요 2년간 주 1일 회사 출근, 4일 리모트 워크의 근무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주 1일 있는 회사 출근은 각 팀별로 정해진 요일에 갔었기에 같은 팀이 아니면 사실상 2년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저번 주 금요일은 오랜만에 부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회사에 출근을 했다. 주말에 사무실 레이아웃 변경이란 큰 이벤트가 있기에 짐을 꾸리기 위함이었다. 짐 정리 때문이지만 거의 2년 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내심 기대하면서 출근을 했다. 좋아하는 향수도 듬뿍 뿌리고!


많은 인원이 함께 짐 정리를 했기 때문에 예정보다 빨리 상황은 끝났다. 그리고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잡담 타임으로 넘어갔다. 리모트 워크라고는 하지만 항상 영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하고 있었기에 전혀 근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니터가 아닌 직접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하호호 재미나게 잡담 타임이 끝나고 각자의 업무로 돌아갔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일을 하고 있던 난, 상사의 한마디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슨 향수 쓰고 있어요?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진짜 좋은 향이네요.”

이 말에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오오! 호감 피드백! 어... 아닌가? 너무 많이 뿌려서 냄새가 고약하다는 의미인가? 진짜 좋아서 묻는 건가? 근데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셨던가? 뭐지? 고도의 돌려 까기 인가? 내가 또 일본인의 간접화법을 이해 못 하고 있는 그대로 기뻐할 뻔한 건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젠 그냥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제가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렸나 봐요.” ”마스크 한 채로 뿌려서 조절이~”

내 반응에 상사는 오히려 미안한 표정이 되어, 진짜 그냥 향이 좋아서 무슨 향수인가 알고 싶었다고 당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바람에 난 더욱 식은땀이 줄줄.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곱씹어서 생각해보니, 2년 전 대면 시대엔 ‘냄새’도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다. 예전엔 지금보다 더 오감을 사용해서 사람과 의사소통을 했었다. 특히 ‘냄새’는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민감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곧 잘 누군가에게 ‘좋은 냄새’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코로나가 뭐라고 이런 것도 잊게 만드는지…

이번에 향수를 뿌린 것은 단순히 ‘내가 좋아서’‘내가 좋아하는 향기’를 나를 위해 뿌렸지만, 원래 내가 향수를 뿌리기 시작한 것은 나는 ‘이런 사람’ ‘이러고 싶은 사람’이란 것을 사람들에게 은근히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썼었다. 그래서 몇 년을 향수 난민으로 이상적인 향수를 찾다가 지금의 향수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가을 겨울엔 펜할리건의 루나, 여름엔 블루벨을 쓴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무슨 향수 쓰고 있어요?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진짜 좋은 향이네요.”

사실, 이 문구는 향수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피드백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말을 그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순순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된 것인가, 아니면 코로나로 인해 오감으로 하는 의사소통을 잊어버렸기 때문인가.

어느 쪽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 오감 커뮤니케이션 이전에 사람 말을 순수하게 못 받아들이고 꼬일 대로 꼬인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상당히 실망했다.)


상사의 진짜 의도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고, 생각해 봤자 결론도 나지 않는다. 결국엔 찝찝한 결말이라면 그냥 순순히 말 그대로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음에 출근할 때도 좋아하는 향수를 듬뿍 뿌리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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