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아침부터 무척 바빴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일이 15통, 메신저에 6건의 문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마감할 일이 2건. 회의가 3건. 어떻게 쥐어짜 봐도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대충 냄비에다가 고구마를 쪄서 한 입 씩 입에 넣기로 결정했다. 삶은 계란도 냉장고 안에 상비되어 있다. 재택근무라 다행이다.
1월부터 2월, 요맘때는 부서이동 시즌이라 원래 한가한 것이 연례 전통이고, 실제로 어제까지 한가했다. 그러다가 오! 늘! 갑자기 이렇게 바빠진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나씩 일을 해치워 나갔다. 그리고 점심때 즈음 가족 카톡방에서 할아버지네 집에 가고 있다는 얘기가 오갔다.
그래. 오늘은 설날이었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한국의 공휴일과 명절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특히 명절은 음력 달력이 없는 일본에서는 챙기기가 힘들다.
일본은 19세기 서구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다.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와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성공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듯 서양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마저 그대로 카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무교육, 무사 계급의 폐지 등 제도적인 개혁도 있었지만 의복의 서양화, 식습관을 서구식을 바꾸기 위해 빵과 우유 등을 권장하는 등의 문화를 급격히 바꾸는 것도 추진했다. 당시 국민의 대부분이 채식주의자가 많았던 일본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보다도 고기 섭취량이 많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제과 제빵이 유명한데 거짓말 안 보태고 진짜, 정말로, 맛있다. 유럽에서 에서 먹는 웬만한 빵보다 일본 편의점 빵이 더 맛있다. 우유도 마찬가지이다. 난 원래 우유를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일본에 와서 우유가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튼 사족이 길었는데 음력도 메이지 유신 때 없어진 전통이다. 일절 안 쓴다. 놀랍게도 요즘 젊은 일본은 애들은 음력이 뭔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지만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시기가 설날이라며?’ 정도의 인식. 아니, 이것을 설날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잡지식이 많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설날인 줄 몰랐다.
이제 설날 즈음인가?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게 하필 이렇게 바쁜 오늘일 줄이야.
마지막 회의가 끝나고 부리나케 영상통화를 했다. 할아버지도 계시고, 할머니도 계시고, 아기들도 돌아다니고, 그냥 내가 불효자식이 된 느낌이다.
근데 오늘 진짜 바빴다. 하필 오! 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