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몽상 Jul 17. 2020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고

폭탄과 안전핀, 돌부처와 풀뿌리.

 최근에 시를 배웠습니다. 시를 배우면서 느낀 점은, 우선 여전히 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를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이 시라고. 과도하면 오로지 자신만의 시가 되고, 부족하면 밋밋하고 맛이 없어집니다. 그 어떤 유려한 문장보다도, 그 간극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시는 자신의 결핍을 은연중에 드러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 그러나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일들. 받지 못한 사랑 혹은 콤플렉스 등. 확연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시의 전반적 분위기에서 풍기는 은은한 냄새가 있다고 할까요.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욕망이든 슬픔이든 활자가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결핍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tvN 토, 일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입니다. 극 중 주인공들은 대부분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결핍부터 큰 결핍까지. 결핍을 극대화한 정신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트라우마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죠.


사이코지만 괜찮아 스틸컷


  이 드라마를 보며,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극 중 박동훈(이선균 분)은 아내가 바람을 피웠고, 이지안(이지은 분)은 사람을 죽였던 적이 있죠. 그 외 다른 인물도 모두가 어딘가 하나씩 망가져 있습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주인공들도 그렇습니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풀려있습니다. 유명한 아동문학가 고문영(서예지 분)은 명성도 높고 돈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는 문강태(김수현 분)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자신의 형 문상태(오정세 분)을 평생 데리고 살았습니다. 돌아가신 홀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문강태에게 '상태랑 항상 꼭 붙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트라우마에 고통받습니다. 고문영은 밤마다 어머니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리고 문상태는 일정 기간을 두고 나비가 나오는 악몽을 꿉니다. 그럴 때면 문강태는 형을 데리고 이사를 다녀야 하죠.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암울하게 살 것만 같던 이들이 서로 만나면서 스토리는 진행됩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결핍된 것들을 얘기하고, 또 밝히지 않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의 행동 덕분에 우연찮게 점차 치유가 되고 있습니다. 고문영은 늘 긴 머리를 고수하라던 어머니의 말을 드디어 무시하고 머리를 단발로 잘랐고, 문강태는 형에 대한 편애로 점쳐졌던 어머니를 다시금 생각하며, 자신을 챙겨주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펑펑 눈물을 쏟습니다


  극 중 고문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전핀과 폭탄, 넌 잘 참고, 난 잘 터트리고." 김영하 작가의 단편 소설 '당신의 나무'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김영하 작가

 

 '당신의 나무'는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독특한 2인칭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내가 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나'를 '당신'으로 바꿨을 뿐인데, 어감의 차이가 만들어낸 몰입감이 극대화된 소설입니다.


 당신은 어려서부터 나무를 무서워합니다. 그런 당신은 지금 앙코르 와트 석조상들을 바수어버리는 거대한 판야나무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한 여자 때문입니다.


 여자와 당신은 정신병원에서 처음 만납니다. 당신은 상담사, 여자는 환자입니다. 당신은 환자에게 이끌리고 여자는 당신의 목에 이빨을 박습니다. 서로 사랑을 하지만, 여자는 많은 히스테릭 환자가 그렇듯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당신의 허벅지를 과도로 찌르고, 다음날이면 당신의 온몸을 핥아주죠.  이제 당신은 스스로 미쳐간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여자를 피해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여자는 당신을 찾아냅니다. 두려웠지만 여자는 당신을 놓아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놓지 못한 건 당신이었습니다.


 당신과 여자는 다시 만남을 이어옵니다. 언젠가 여자는 이별을 통보합니다. 머리를 식히러 가는 걸까요. 아니면 무엇을 보기 위해 가는 걸까요. 그 이유는 당신만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캄보디아로 떠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계속 여자를 생각합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앙코르 와트에서 당신은 한 노승을 만납니다. 당신은 노승에게 나무가 무섭다고 합니다. 노승은 왜 그런가 묻습니다. 이곳의 불상과 사원을 짓눌러가며 부수어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답합니다. 이에 노승은 답합니다.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돌이 나무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 (중략) -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구백 년을 견뎠다네.


앙코르 와트 사원 - 다음 블로그


 당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고 한 여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당신은 한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이 뿌리를 내려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버린 한 여자에게 말이다. 네 몸이 그립다. 안고 싶고 빨고 싶고 네 속으로 들어가 똬리를 틀고 싶다.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고 싶다.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잘못 건 전화인지도 몰랐다. 당신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무언가 유사하다는 들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안전핀과 폭탄, 그리고 풀뿌리와 돌부처의 관계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고문영과 문강태는 서로의 머리에 똬리를 틀고 이빨을  박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거 불능의 존재는 아닙니다. 깊이 뿌리내리기 전에는. 인연이라는 건 만두피보다 얇아서 쉽게 찢을 수 있습니다.

단지, 그들은 스스로 잠식당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씨앗이 점차 자라나 자신을 조종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죠. 그들이 왜 그럴까요. 아마도 위안을 얻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안전핀과 폭탄, 나무와 돌부처. 결국 터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서로를 의지해 가면서, 서로를 믿어주면서 종장에는 자신의 결핍을 동반자로부터 위로를 받는, 그리고 자신은 동반자에게 채워주는 존재. 사랑입니다. 한 사람은 안전핀을 뽑으려고 하고 한 사람은 지키려고 하고. 가끔 싸우고 짜증이 날 때가 있지만 결코 터지지는 않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의 임플란트가 되는 그런 관계는 실존합니다. 돌부처를 쪼개는 뿌리지만, 결국 돌부처를 지지하는 것도 뿌리인 것처럼.


 글을 쓰다 보니 드는 생각.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떠오릅니다. 언젠가 위안이 되었던 관계였던가요 아니면 홀로 위안을 받아먹은 관계였던가요. 쉽게 결정 내리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어느 한 시점 정도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상대의 몸속에 자라나 구멍을 꽉 채워주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혹여 일방적 위안이었다면. 뱀이 되어 서로의 목을 감싸고 독을 주입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결핍이란 구멍을 찾아서 일부로. 피가 응어리지도록. 여러분은 어땠나요?




 반대 성향의 사람들의 만남이 만들어낸 변화, 자극제가 되고 안정제가 되는 그런 관계. 코믹함, 그리고 진중함이 적절히 섞여 종영할 때까지 많은 이들에게 힐링과 웃음을 줬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드라마 추천드리면서 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